[칼럼] 나무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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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프랫 삼림 보존 구역 공원을 찾아갔다. 짙은 숲을 이루었던 나무의 모든 잎은 떨어지고 벗은 몸이지만 호수에 비친 대칭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나무는 잎이 떨어진 자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아물게 하며 새 봄에 다시 싹을 내기 위한 봉오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보면서 나무와 잎을 생각하게 된다.

따뜻한 봄기운이 오면 봉오리 속에 있는 작은 생명은 더 이상 갇혀 있을 수 없어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고 나온다. 찬 겨울 휴식의 오랜 기다림을 지나 새로운 시작과 성장의 희망으로 부풀어 싹과 잎, 꽃을 피우며 찾아가는 우리에게 신기함과 생명의 힘을 더한다. 잎은 이산화탄소(탄산가스)와 물, 햇빛을 받아 광합작용의 부엌에서 영양이 풍부한 당분 음식과 에너지를 요리하여 나무에 공급한다. 잎이 푸른 것은 왕성한 광합작용으로 건강하다는 표시이며 나무를 옷 입히고 무성하게 하여 그 위용을 자랑하면서 우리 생명을 위한 산소를 내어 뿜는다. 아마존을 세계의 허파라고 하는 것은 그곳에서 나오는 산소가 세계를 살린다는 말이다. 나무가 자라는데 필요한 물은 소량이기에 뿌리가 빨아드린 과량의 물은 잎이 저장하다가 뜨거운 여름에 잎의 잔잔한 구멍을 통하여 발산함으로 더위를 식혀준다. 그 나무 아래에서 우리도 시원함과 함께 가슴을 펴서 산소를 받고 탄산가스를 내어주며 깊은 호흡으로 생명을 교류한다. 잎으로 덮인 산과 숲의 생명력은 약물과 의술로 치료되지 않은 여러 병을 회복시키는 실례가 많거니와 그것으로 나무는 크게 자라고 뻗어나 관상이나 목재로 훌륭하게 사용된다.

잎이나 나무는 자연에 그대로 순응한다. 항상 봄이나 여름이 아니다. 가을과 겨울에 대비하여 여름 동안 활발한 광합작용으로 많은 양식을 만들어 저장하는 가운데 성큼 가을이 다가온다. 날씨가 시원해지면 잎은 광합작용을 중지하고 양식과 엽록소를 만들지 않으면서 잎의 색갈이 빨강 노랑 또는 주황으로 바뀌어 보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주기에 우리는 단풍을 즐기고자 멀리 찾아가기도 한다. 이 아름다움은 추수와 저장을 알리는 잎의 황금기요 나무의 겨울양식이 준비되었기에 잎은 사명을 완수하였다는 것이다. 일이 끝나기도 하지만 추운 겨울이 오면 잎이 있으므로 나무는 눈과 얼음의 추위와 강한 바람에 넘어갈 수 있기에 잎은 나무를 위하여 물러 앉고자 스스로 자기가 있던 곳을 떠나거나 또는 밀려나더라도 항거 없이 내리며 미풍에도 날려 여기 저기로 흩어진다. 잎은 어느 곳에 앉든지 뿌리를 감싸주는 이불이 되고 자기를 썩히며 땅을 새롭게 하여 생명을 일으키는 준비를 한다. 잎이 없는 나무는 겨울 동안 저장된 양식을 소비하며 생명의 봄을 기다린다.

잎이 없으면 나무는 건강하고 활발하게 뻗어갈 수 없지만 동시에 잎은 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 떨어지면 그의 생명은 다한 것이다. 잎은 나무에 붙어있을 때만 생명을 유지하고 번성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생명의 주인은 말씀한다. 우리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생명이 일어나고 꽃을 피우고 아름다움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잎인 우리가 없이는 나무가 자기 기능을 다할 수 없기에 나무와 잎은 생명과 활동의 관계임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