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아버지 14回

1121

ha-jae-200x200

하재관(시카고노인건강센터 사무장)

 

태수(필자의 아버지, 어린 시절을 소개함으로 당시의 이름을 그대로 부름)는  9살 때 아버지를, 12살 때 어머니를 잃고 증조부 댁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형님과 누이동생 셋이서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가문에서 퇴출당하고 동래에서 핍박을 받아도 굽히지 않고 기독교신앙을 지켰다. 당시는 기독교 박해가 심하던 때라 예수믿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때였다. “핍박과 천대를 받더라도 예수님을 버리면 그집은 망한다.”는 어머니의 유언을 기억하고, 태수는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예배당에 나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고 눈물을 나누는 버릇이 생겼다. 형은 외향적이라 자주 나 돌아다니고 살림에 보탬이 되지못했다. 태수는 누이동생을 보살피며 천자문을 놓고 독학을 계속했다. 서당 아이들의 글소리와 훈장의 가르침을 서당 밖에서 귀동냥으로 공부를 했다. 향학열이 얼마나 높았던지 논에 모를 심을 때면 한자의 획을 긋는 듯 하고, 갈퀴로 낙엽을 끌어 모을 때면 글자가 무더기로 갈퀴에 걸려 들어오는 듯 온 찬하가 글자로 보였다. 형은 논 세마지기를 팔아 일본으로 가고 여동생 (하차기)는 교회 여 집사님의 집에 수양딸로 갔다. 남매가 뿔뿔이 헤어졌다. 태수는 이젠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야한다. 열네 살 나이에 어른처럼 고독을 감내해야하고 고생을 이겨내야 했다. 그러던 중 태수는 양잠업을 하는 김영규씨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집에 머슴으로 갔다. 주인은 당시 아주 소상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 양잠법과 뽕나무 다루는 법을 소상히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편지 쓰는 법 書簡尺讀(서간척독-대나무쪽에 쓴 글)도 가르쳐주어 얼마 안 되어 行文상으로 제법 유식할 정도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태수는 천연두(마마)로 열흘 동안 혼수상태에서 헤맸다. 동리 어른들이 모여 생사를 확인(귀로 숨소리를 듣고 팔목의 맥박을 더듬어 보는 정도)하려고 최선을 다 했으나 死亡判定이 나지 않았다. 이틀 후엔 태수를 관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 못질을 시작했다. 시작하자마자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망치소리에 깨어났는지 아니면 때가 맞았는지 알 수 없지만 둘둘 마른 포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모두들 깜짝 놀라 포대를 풀어주었다. 얼굴에 맺힌 수많은 물집(천연두)이 동시에 터지면서 ‘어머니!!!’라는 가냘픈 소리가 들렸다. 태수가 살아났다. 기적과 같은 이 사건으로 인해 온 동리 사람들은 ‘불쌍한 태수를 하나님이 살렸다.’ 모두 입을 모았다.

며칠 후 딱지가 떨어지더니 코밑, 양볼 그리고 눈 아래 곰보자국이 생겼다. 태수를 모르는 사람은 ‘곰보 아이’하면 알 정도로 대명사가 되었다. 태수는 지난 열흘간의 혼수상태를 이렇게 얘기했다. “하늘엔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정원에는 가지각색의 꽃들이 활짝 피었고, 산등성이에는 먹음직한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에덴동산이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어머니가 웃으시면서 오시는 거예요. ”태수야, 왜 벌써 왔노? 대성(형)이도 차기(여동생)도 잘 있노?“ 물었습니다. 태수는 ”어머이, 이젠 괜찮으신 기요?“ 반가워 물으면서 ”예, 행님은요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일본으로 갔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모습으로 좀 주춤하시더니 “태수야, 이걸 받아라. 구슬이다!” 하시면서 빨강, 노랑, 파랑 구슬 세 개를 주셨다. 구슬을 주머니에 넣는 순간 나는 깨어났습니다.“ 태수는 그런 세상이 진짜 있다는 듯이 말하면서 물 좀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태수는 그동안 일을 못해 미안스러웠던지 지개를 지고 소꼴 베러 나갔다. 발에 차이는 풀잎의 아침이슬, 야산에서 들려오는 산새소리, 논 두럭의 물 흐르는 소리, 소들의 울음, 새벽을 알리는 닭들의 나팔소리, 개들이 짖는 소리! 옛 고향에 온 듯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