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아버지 17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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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관(시카고노인건강센터 사무장)

 

歸鄕했던 형님이 일본으로 되돌아왔다. “10년 소식도 없이 살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호되게 따지는 처갓집 때문에 누어보지도 못하고 친구 집으로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본을 향해 떠났다. “돈을 벌어가지고 가지 그냥은 절대 안 가겠다.” 결심하고 야하다 제철소에서 막노동으로 두 달 동안 열심히 일해 90원을 벌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동생이 준 돈과 합해서 밭 3마지기를 사고 네 칸짜리 집을 장만했다. 처갓집의 대우가 달라졌다. 조그만 통통 방아를 사서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소규모 精米業을 했다.

태수는 형님을 보내놓고 야하다 제철소에 취직했다. 고향에서 머슴살이 일 년 삯이 30원인데 비하여 야하다 제철소의 年俸은 420원이었다. 엄청나게 많았다. 태수는 돈을 벌어 고향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하루는 다리가 아프고 손에 물집이 생겨서 쉬고 있는데 문간방에 살고 있는 ‘와다나베’라는 일본 청년이 찾아왔다. 이 청년도 돈벌러 와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몸집도 비슷한데다 성격도 원만해서 쉽게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소개로 그의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應試하여 합격통지를 받았다. 금상첨화로 야하다시 부기고등학교에도 합격되어 저녁엔 공부하러 다녔다. 복이 무덕이로 쏟아졌다. 어느 날 집주인 오제끼가 찾아와 “이곳에 와서 30년동안 하숙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보았지만 당신같이 운이 좋은 사람을 본적이 없소! 당신의 하나님은 정말 믿을만한 신이오. 당신이 믿는 신을 찬양하오”라고 격찬을 해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쭈-ㄱ 흘러내렸다. “어머니! 태수는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며 오늘 일어난 일을 소상히 이야기 해 드리고 싶었다. 아들이 예수 믿고 성공했다는 이야기, 어머니가 제일 기뻐하실 이야기고 간증이다. 이 기쁨에 젖어있는데 와다나베가 저녁을 같이하자며 소매를 잡아당긴다.

방에 들어서니 오뎅(어묵) 냄새가 은은하다. 조그마한 레디오에서 일본 가요가 흘러나온다. 깨끗한 다다미, 갓 씌운 등불, 숫불 煖爐, 깨끗하다. 미찌꼬 양이 예쁜 쟁반에 오뎅, 쓰께모노(절인야채) 등을 담아 들여왔다. 긴 머리에 갸름한 얼굴, 인형 같은 눈망울, 부드럽고 상냥한 음성….. 호감이 가는 여성이다. 꿇어 앉아 공깃밥을 태수에게 먼저 권한 후 오빠에게 식사를 올렸다. 조용히 일어나 뒷걸음질로 나갔다. “지금 나간 아이가 내 동생인데 자네와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어…….. 어떻게 생각해?” 와다나베가 물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 내미는 식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해…. 동생의 의견은 어떻던가? 물어보고 하는 말인가?” 태수가 물었다. “자네라면 내 동생을 주어도 된다고 생각해! 미찌꼬도 좋다고 그랬어! 자네는 자수성가하고 하나님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이고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보기 드문 존재야. 잘 생각해봐! 미찌꼬는 유치원 선생으로 일하면서 풍금(Organ)을 배우고 있어. 중학교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얘기하는 동안 미찌꼬 양이 모찌(찹쌀떡)와 홍차를 들고 들어왔다. 조용히 앉아 두 손으로 차를 권한다. 손도 예쁘다. 마음이 간다. 무엇이라 얘기를 걸어야 될지 주저하다 ”미찌꼬 양은 예수를 믿나요?“ 태수가 물었다. 미찌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가와다(河田-태수를 가리킴)상이 믿는 예수님을 나도 믿고 싶습니다!“고 정중히 대답했다. 태수의 마음이 미찌꼬에게 가고있다. 그러나 어머님이 신신부탁한 말씀이 생각났다. ”일본여자와 결혼 하면 안 된다.“ 생각하니 아무리 미찌꼬가 마음에 와 닿는 다해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또 다른 이유는 忠㤠公 河緯地(사육신의 한 사람)의 자손으로서 일본여자와 결혼하면 역적이 된다는 생각도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릴 때 영주 읍에서 함께 학교 다니던 김창덕 이라는 여자가 머리에 떠올라 서운하지만 미찌꼬와의 만남은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