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인생의 전리품

703

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예수님께서 아직 사람을 태우지 아니한 나귀를 한 마리 끌고 오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한번도 여행의 안락함을 위하여 말이나, 나귀나, 마차를 타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습니다. 가서 사람이 한번도 타지 않았던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왕의 모습으로 입성하여 이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기대에 부풀어 나귀를 가지러 가던 제자들은 만나는 사람들 마다 신나서 이야기를 합니다. “드디어 우리 예수님이 왕이 되신다. 그분이 나귀를 타시고 왕으로 입성하신다.” 그들의 말은 순식간에 온 지경에 퍼졌고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무성한 감람나무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그들의 겉옷을 펼치며 흥분에 도취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왕의 행렬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셨을 때 백성들은 그분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었으나 그때 주님은 그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이러 하셨던 예수님께서 그동안 한번도 허락하지 않으셨던 환호와 찬송을 용납하셨습니다.

옛날 조선시대 왕의 행차는 어떠했을까요? 왕의 대궐 밖 행차에는 왕의 신변을 보호하고 행차를 장엄하게 꾸미기 위해 수많은 군사는 물론 각종 의장이 동원되었습니다. 왕의 행차에 함께 하는 호위 병사, 수행원, 의장의 규모는 그 목적에 따라 대가, 법가, 소가 세가지로 구별되었는데 이 중에 중국의 칙사를 맞이하거나 종묘사직에 참여하기 위하여 행차하는 대가의 경우에는 약 1만명 정도가 동원 될 정도로 그 규모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차는 세상의 왕들과는 달랐습니다. 그 행렬에는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군사들이나 의장대는 없었습니다. 정복자의 용맹을 나타내는 전리품이나 신음하는 포로들의 대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렬에는 당신께서 사단의 권세로부터 건져 주신 구원받은 영혼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눈을 뜨게 한 소경이 길을 인도하고 있었고 그 분이 혀를 풀어 주신 농아인이 가장 큰 소리로 “호산나”를 불렀으며 깨끗함을 받은 나병 환자들이 그들의 깨끗한 옷을 그분의 길에 펴고 영광의 왕으로서의 예수께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들은 바로 예수께서 사랑으로 행한 수고의 영광스러운 전리품들이었습니다.

지난 20일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오전 이전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그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를 일궈냈다고 자평 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 올 것이라고 말하고는 플로리다로 떠났습니다. 세상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의 뒷모습이 허무하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물론 저마다 가진 정치적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이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과 평가는 다양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가 남긴 것에 대한 평가는 후대의 기록에 어떤 형태로는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길에 우리는 어떠한 전리품을 남길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에는 예수님과 같은 전리품이 남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통해 진리에 눈 멀었던 자들이 눈을 뜨고, 절망의 늪에 빠져서 걷지 못하던 자들에게 소망의 기별을 증거하고,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했던 영혼의 전리품이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