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가 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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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1년 중 절반의 시간 동안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노르웨이에 ‘리우칸’이라는 작은 마을 입니다. 북유럽의 지역적 특성상 동절기가 되면 일조량이 적어지는 데다가 이 마을은 해발 1883미터가 넘는 깊은 산지에 둘러싸여 있어 겨울이 시작되는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장장 6개월 동안 햇빛을 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이 마을에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날 수 많은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하여 마을 광장에 모여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항상 높은 산 그림자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태양이 마을 맞은 편 높은 산등성이에 세워진 세개의 초대형 거울에 반사되어 마을 광장에 환한 햇살을 내비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울에 반사된 햇빛이 처음으로 마을 광장에 비춰질 때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마을 사람들은 노르웨이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으며, 일부 주민은 일광욕을 즐기며 칵테일을 마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빛을 찾습니다. 빛은 우리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 줍니다. 빛은 캄캄하고 어두운 밤 우리의 앞길을 비춰주는 인도의 의미가 됩니다. 빛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줍니다. 빛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빛을 찾습니다.

그렇다면 이 어두운 세상에 누가 빛인가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이곳에 언급된 너희는 곧 다른 사람이 아닌 갈릴리 언덕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과 백성들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여서 그들로 세상의 빛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세상의 빛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사도바울의 지적처럼 유대인들은 그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롬 2:17-19). 이 세상 그 어느 민족이 갖지 못했던 하나님의 밝은 빛을 받은 민족이었지만 그들은 그 빛을 높이 들어 밝게 비추려 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위한 빛으로 삼기 위해서 빛을 말로 덮어두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진정한 빛으로 이 땅에 누가 오셨습니까? 그 참 빛의 성취가 예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 이로라”(요 9:5). 진정한 빛, 곧 참 빛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그 빛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곧 우리에게 주십니다. 주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 하실 때 이 ‘너희’의 헬라어 대명사는 강조를 나타냅니다. 주께서 강조하여 너희가 바로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8)

한국의 최장수 등대원으로 은퇴한 이규억씨라는 분입니다. 그는 무려 35년 9개월 동안 등대의 불빛을 지키는 등대원(항로표지관리원)으로 사셨습니다. 그가 평생의 등대지기로서의 삶을 마무리 하면서 인터뷰 하기를 그의 삶을 외롭고 고독 했지만 기쁨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서 우리나라까지 와서 부산항을 들어올 때 저희 오륙도 등대 불빛이 10초마다 깜박여줄 때 그분들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어두움 밤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아들과 사위까지 등대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규억씨는 말하기를 자신의 대를 이어 등대원이 된 아들과 사위가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고독과 싸워야 할 생각을 하면 안쓰럽기도 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이 빛을 비추는 등대지기의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참 빛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그 제자들에게로, 지나간 역사 속에 수많은 믿음이 선배들에게서 오늘 나에게로 주어진 이 복음의 빛. 그 빛을 비추는 사명이 나에게 주어졌다. 누군가가 빛을 비추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