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더 큰일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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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선한 이웃교회 담임/미 육군 군목)

“Escape your own bubble” (당신의 작은 세계로부터 나오세요!) 아마도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만나고나서 하시고 싶은 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성경중 요한복음에 한번 등장하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은 예수님께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거짓을 모르는 진솔한 사람’으로 소개되었지만, 동시에 그는 자기만의 작은 세계안(Personal Bubble)에 갇혀사는 ‘비관적’ 이며 ‘냉소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빌립의 전도로 예수님을 소개받았을 때, 그는 말하길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말은 ‘갈릴리 출신인 예수에게 어떤 희망이 있겠는가?’라는 그의 부정적인 삶의 태도를 대변하는 말입니다. 이런 나다나엘을 만난 예수님은 그를 이미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었던 때부터 보아왔노라”고 말함으로써, 완고하게 닫혀진 그의 마음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그리고 비관적이었던 그에게 희망에찬 약속을 주십니다. “이제 장차 더 큰 일을 보리라!”고 말입니다. 나다나엘의 어린시절을 기록한 시리아 사전(Syriac dictionary)에는 헤롯에 의해 베들레헴의 유아들이 살해될 당시, 그의 어머니가 그를 안고 무화과 나무아래에 그를 눕혀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곧, 나다나엘을 대면한 예수님의 첫마디는 ‘내가 너를 소식적부터 주목하여 알고있었다’는 말씀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만든 작은 울타리(Bubble)를 깨뜨리고 밖으로 나오려는 것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똑같은 냄새’를 가진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을 가장 자연스럽고 편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넓은 미국땅에 살면서도 오히려 “작은 한국”(Small Korea)안에 여전히 머물러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꿈도 작아지고, 생각도 편협되고, 작은 비판에도 참질 못하고, 인생도 세계관도 오래전에 자기안에 쌓아놓은 작은 세계안에 머물러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도 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마치 나다나엘이 자기의 버블안에 머물며 세상을 향해 냉소하듯,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도 세상을 향해 회의와 냉소에 찬 삶의 태도를 품고 살아가는 것을 자주 보게됩니다. 이같은 우리들에게 주님이 하시고 싶은 말은 아마도 “Escape your own bubble!”이라고 하지 않으실까요?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당신의 눈을 떼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과,  우리의 인생에 ‘더 큰 일을 이루실 분’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분”으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음을 봅니다: “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편 139) 마치 무화과 나무아래 놓여졌던 이름모를 인생, 나다나엘을 잊지않고 지켜보시듯,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감찰하시며,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을 향해 약속하시듯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의 인생길에서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人子)위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이 말씀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일들 이면에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쉼없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계시며, 쉼없이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며 우리 인생가운데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보는 우리의 안목은 작은 버블안에 갇힌 편협함과 좁은 시야를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이제  “더 큰 일을 보리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내 삶의 한가운데서  “하늘문이 열리는” 것을 볼 줄아는 깊고 높은 믿음의 눈이 열려야하겠습니다. 새해를 힘차게 출발하는 성도 모두에게 “더 큰 일을 보이시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한 해를 승리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