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거운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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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일제에서 해방의 감격을 가진 한 시골 소년이 아이들과 함께 산넘어 국민학교에 다닌다. 책과 도시락 보따리를 어깨나 허리에 멘다. 여기에 힘 쓰는 아이가 있어 자기에게 짐이 되는 책보따리를 나에게 맡기며 가지고 오라 한다. 키가 작고 힘이 약한 나는 저항 못하고 짐이 무거우니 그 아이가 싫고 밉다.

이런 일은 언제나 있다. 짐이란 없으면 쉽지만 짐은 힘을 길러주고 책임과 인내를 키워준다. 가난과 병고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일하고 배우고 교육하며 이주도 하지만 어느것 하나 가벼운 것이 없으나 가족부양과 자녀교육은 기쁨이요 전체적으로 교육 과학 기술, 직업은 발전한다.

대학 졸업 후 나는 한 여인을 만나 교제하며 목사가 될 것이라 하니 그는 목사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목사는 가난하고 고생하고 거룩한 위선자 같다는 것이다. 목회하는 목사인 것 같다. 목사라도 교수라면 괜찮다고 하여 결혼하다. 신학을 하고 교수가 되고자 유학하며 가족을 초청한 것은 즐거움이지만 학생이 5명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박사과정 입학이 되고 석사를 끝내는데 한 교회의 초청이 왔다. 뜻밖의 일이다. 지도교수는 가족과 함께하는 박사공부는 몹시 힘드니 교회의 초청을 받으라고 권한다. 3년 기한을 생각하고 초청을 수락하지만 큰 도전이다.

그 교회는 이민 초창기 의사 간호사 전문직, 유학생, 다문화 가정등 100여 세대 한인이 있는 중소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목회훈련이 없는 나는 오직 섬기는 자로서 열심을 다하여 교인만 아니라 전체 한인을 심방하고 교회 안과 밖으로 사역을 확장시키며 노회가 허락한 자체 건물로 이전하다.

가발가게를 하는 이웃의 모친이 손녀들을 돌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자주 돌보아 주었다. 하루는 부인 혼자이기에 제 아내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거절할 수가 없다. 그날 교회에서는 여성도들이 행사 음식 준비를 하는데 사모가 없다. 가발가게에 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한 사람이 전화에서 욕설로 소리를 지른다. 그의 성격을 아는 가게 주인은 대꾸말고 얼른 가라고 한다. 사모를 보더니 코너에 몰고 갖은 위협을 한다. 온갖 수욕을 참고 감정을 억제하다가 칼에 손을 다친다. 저녁에 나는 오히려 가해자를 심방하니 아무 일 없는듯이 음식을 준비하고 웃으며 반긴다. 아내는 사람이 더욱 싫어 한국으로 도망하고 싶다. 주일 교회에서 사람들이 싫어 별관의 고장난 화장실에 숨으나 냄새가 심하여 창문을 여니 찬양 소리가 들린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길이 길이 변함 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나는 뭐에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하소하다 찬송소리에 이끌리어 본당으로 간다. 눈물이 쏟아지는데 앞에 현수막이 나타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한다. 순간 그 무거운 짐을 벗어 주께 드린다. 가벼움만 아니라 속에서 기쁨이 올라온다. 놀라운 일이다. 삶이 달라진다. 3년후 공부하러 갈 때가 되자 “목사가 목회하면 되지 공부 더 하면 무엇하느냐” 할 정도다. 사모의 위치와 일은 그대로인데 그것이 더 이상 짐이 아니라 기쁨이다.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은 등의 짐이 크고 무거워 신음하고 방황하다가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그 짐이 굴러간다. 우리의 짐이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기쁨이 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선택할 일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