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지개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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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7’이라는 숫자는 영적으로 완전수를 의미한다. 태초의 창조가 7일로 완성되었고,(창1장)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 때 참된 용서가 이뤄진다고 성경은 증거한다.(마 18:21-22)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유언하신 것처럼 남긴 말들이 가상칠언이며 요한계시록에서는 심판과 종말의 상징을 설명할 때, 일곱 촛대와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에서도 한 주의 ‘월화수목금토일’이 7일로 정해져 있고 ‘도레미파솔라시’ 음계도 7개로 구성되어, 7이라는 숫자가 모든 것을 완성함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물의 심판에 대한 마침도 7개 색을 가진 무지개로 마무리되는 것을 알 수 있다.(창 9:12-13)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노아(인간)와 맺어지면서 완전을 상징하는 7가지의 색깔인 무지개가 그 언약 가운데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7가지의 무지개 색깔은 각각의 의미가 있다. 빨간색은 정열을 상징한다고 한다. 주황은 인내, 노랑은 평화라고 한다. 또한 초록은 쉼과 휴식, 파랑은 희망, 남색은 겸손을 의미하며, 마지막 보라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무지개의 한 두 가지의 색깔로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다. 7가지의 색들이 조화를 이뤄가며 하나의 “무지개”가 된다는 의미를 가져와, 하나님은 인간과 약속을 하신 것이다. 여기서 조화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자연(창조세계),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 모든 창조 세계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곧 노아의 때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한 채, 세상에 우상을 세우고 살아가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며 소비하려고만 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무지개 언약의 의미는 단순히 아름다운 색깔로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는 상징이 아니라, 7가지의 색이 조화를 이뤄 관계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물의 심판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더욱 보살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바르고 옳은 길을 걷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랍의 속담에 “태양만 비추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태양빛을 맞는 것은 참으로 좋다. 하지만 태양만 계속 비추면 땅은 사막이 되고 인간은 병이 걸릴 것이다. 때론 비도 필요하고 구름도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바로 물의 심판 이후 하나님이 노아(인간)에게 무지개를 통해 약속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자연과의 관계가 신앙 가운데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언약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무지개 언약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띠우고 있는 무지개는 바로 우리 주변의 자연세계이다. 자연 세계가 무지개의 7색깔처럼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인간은 물이 아닌 다른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떤가? 한국은 미세먼지와 물의 녹조가 심각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공기와 물을 썩게 만든 것이다. 미국은 세계 기후와 환경을 위해 많은 나라가 참여했던 “파리기후협정”을 최근 탈퇴했다. 놀랍지도 않다. 미국은 여전히 전세계 환경오염 유발 요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후진국에 수출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라서 놀랍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미국은 무지개언약을 가장 무시하고 쉽게 깨고 있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바벨론과 앗수르, 로마 제국과 같은 미국에 세워진 한인이민교회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가장 성경적인 것은 무지개 언약을 준수하는 것이다.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모라토리엄이 선언된 것뿐이다. 인간이 그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심판은 다른 것으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조금씩 그 심판이 몰려 오지 않는가? 무지개 언약을 준수하자. 그 외침이 기도처럼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