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물위를 걷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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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장면은 신앙에 꼭 필요한 영적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을 겁니다. 거센 바람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으니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을 겁니다. 물위를 걸어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중에도, 베드로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던 시선을 강한 바람과 바람이 만들어낸 거친 풍랑 쪽으로 돌리고 만 겁니다. 그 순간 베드로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채워졌고, 그 결과 그는 신비한 하나님의 세계에서 벗어나 즉시 상식이 지배하는 현실 세계로 이동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물위에 서있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였지만, 갑자기 몰려온 두려움 때문에 경직된 몸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물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겁니다. 이 장면을 통해 무엇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린 스스로에게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지고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무엇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가?” 성찰의 도구는 하나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말씀을 읽는 성도들 안에서 엄청난 일을 합니다. 교훈을 줍니다. 잘못된 것들을 드러내 책망합니다. 비뚤어진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아 줍니다. 의, 즉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디모데후서3:16). 그래서 초대 교회의 리더들은 성경을 캐논, 즉 자(measure)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딱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성찰의 시간 후, 오직 하나님께 사로잡힌 삶이 되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높은 산을 훌쩍 넘고 넓은 바다를 껑충 건너며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맘껏 부르는 복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속수무책,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던 베드로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님은 즉시 손을 뻗어 베드로를 건져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손을 놓쳤다는 걸 깨닫는 순간, 베드로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 위기에서 자신을 살려줄 분은 오직 주님 뿐이라는 걸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주여.” 하고 외친 겁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며, 모든 피조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절대자이시며 초월자 되시는 하나님과 지금 기도를 드리는 ‘내’가 아빠와 자녀 사이라는 걸 분명히 믿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또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라 고백하면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아빠 하나님은 피조물들과는 달리 전지하고 전능하시며 신실하시기 때문에 어떤 기도를 드려도 다 이루어 주실 분임을 100% 믿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내’ 기도를 들으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히 믿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런 믿음의 기도는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그 짧은 순간에도 주님의 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보다 훨씬 더 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시험과 유혹들을 수없이 만나게 될 겁니다. 그때마다 쓰러지고 나서 다시 일으켜 달라고 기도할 순 없습니다. 미리 예방하는 기도가 필요한 겁니다. 주기도문 안에 예방 차원의 기도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주세요.” 주님도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매일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루의 사역이 시작되면 만나게 될 수많은 시험과 유혹을 이기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결과 주님은 흠 없는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올라 구원을 완성하실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손을 믿음으로 붙잡는 순간 하나님의 나라 안에, 그러나 그분의 손을 놓치는 순간 냉혹한 현실 안에 서게 됩니다. ‘내’ 현주소는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