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크리스마스의 역사(2)

1112

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우리는 대부분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나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며 잠들던 어린 시절, 교회는 안 다녀도 선물을 받으러 교회 갔던 기억, 성탄 이브에 교회에 모였다가 새벽송 돌고 밤새 ‘올나잇’하던 재미있는 추억들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19세기 초 뉴욕에도 과거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대한 노스탤지어(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뉴욕은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빠르게 증가했고 계층 간의 갈등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종종 싸움이 일어났고 심지어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참고로, 오늘날과 같은 풀타임 전문 경찰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뉴욕 거리가 어땠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술 취한 사람들과 구걸하는 이들도 가득했다. 이건 공권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뉴욕의 부자들과 상류층 사람들은 이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실제 폭동으로 이어진다든지 해서 자신들의 위치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실 과거(17, 18세기)에는 비록 무질서해 보이는 일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를 흔들 만큼 중대한 이슈는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에게 선물(음식, 술, 돈)을 요구하고 선물의 답례로 노래(drunken song)를 불러줄 때, 그것은 일시적이고 상징적인 역할 바꿈(role inversion)이었지 실제적인 계층의 자리바꿈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1년에 한 번 있는 그 풍습은 오히려 계층 구조를 확고히 하는 기능까지 해 주었다.

하지만 19세기 초 뉴욕의 크리스마스는 전혀 달라 보였다. 부자들과 노동자 계층 간에는 심각한 갈등과 적개심이 존재했다. 음식을 받고 노래를 불러주는 “선의의 선물 교환”은 이제 훈훈하고 아련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과거 뉴잉글랜드의 선조들에게 골칫거리였던 크리스마스 문화가 이들에게는 오히려 되돌리고 싶은 노스탤지어가 된 것이다. 아, 옛날이여. 스티븐 니센바움(Stephen Nissenbaum)이라는 학자에 의하면, 과거 전통에 대한 향수를 가졌던 뉴욕의 귀족층들(Knickerbockers)이 새로운 형태의 크리스마스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들에 의해서 과거 크리스마스 전통과 풍습을 소재로 한 소설(물론, 사실과 다른 픽션)과 시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여기에 산타클로스의 원형인 성 니콜라스(St. Nicholas)도 등장한다.

그들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크리스마스 축제의 장소를 ‘공적 영역’(public sphere)에서 ‘사적 영역’(private sphere)으로, 즉 뉴욕의 거리에서 각 가정집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이제 선물을 요구하고 받는 주체는 가난한 농민에서 어린아이로 대체된다. 아이들은 산타(혹은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고, ‘기쁨과 환호’로 답례했다. 뭔가 비슷한 구조가 보인다.  과거 크리스마스 시즌에 부자들과 농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선의의 선물 교환”이 새로운 옷을 입고 재탄생한 것이다. 단, 계층 간 자리바꿈의 위험성이 집 안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진 것일 뿐. 이것이 바로 미국인들의 “가족 중심의 크리스마스” 문화가 형성되는 첫 배경이다.

한국인에게 성탄절은 ‘교회 가는 날’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절기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에는 이 ‘가족 중심의 크리스마스’(family-centered Christmas)가 성공을 거두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산타 할아버지에 관해 살펴보려 한다. 산타는 어떻게 크리스마스의 중심이 되었을까? 왜 성 니콜라스는 사제복을 벗고 뚱뚱해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