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믿음으로 구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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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박사(횃불재단 트리니티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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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믿음이 있는 자, 즉, 심령이 가난한 자의 또 다른 특징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의란 옳은 것을 뜻한다. 심령이 가난하다. 심령이 배가 고프다. 그러므로 마음이 배가 고프므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 배고픈 마음이 먹는 음식이 ‘의’다. 가난한 심령은 “의”라는 음식을 먹는다. 자신이 의로운 자, 올바른 자가 되기 위하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노력한다. 참믿음이 있는 자는 이렇게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옳은 것을 찾는다. 옳은 것을 실천한다. 이런 사람이 참믿음이 있다. 그러니까 믿음과 순종, 믿음과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은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구원파가 가르치는 믿음과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이렇게 다르다.
다음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는 긍휼히 여기는 자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마음이 가난한 자를 이웃과의 관계에서 바라본 표현이다. 하나님이 반역한 인간에게 자비로우셨듯이 마음이 가난한 자, 즉 믿음이 있는 자도 이웃을 향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자다. 즉 이웃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말이다. 주기도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마태복음 18을 보면,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진 자가 있다. 왕은 이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에서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자의 빚을 탕감해 주지 않고, 감옥에 집어넣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일만 달란트 빚을 진 자를 지옥에 보낸다. 이 비유에서 왕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누가 지옥에 가는가?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는 자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구원받게 하는 실체, 즉 참믿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마음이 청결한 자다. 그는 하나님을 본다 (마 5:8).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마음이 더럽기 때문이다. 불의한 자는 이렇게 조롱한다. “하나님이 내 앞에 나타나 내가 하나님을 이 두 눈으로 보면 그때 믿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그 자리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마음이 더럽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셔서 더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본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거룩하기 때문에 더러운 마음을 소유한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면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 그래서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틈에 숨기고 그의 영광이 지나가게 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단지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지만, 우리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과거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외워도 깨닫지 못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죄로 얼룩져 더러우니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만 치우치다 보니 율법론적으로 흐르게 되었고 예수님께 꾸짖음 당했다. 하나님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예수님의 피와 성령으로 씻음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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