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병실을 채운 진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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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시카고)

영문 메시지가 떠서 열어보니 “목사님 지금 바로 연락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짧막하지만 다급함이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전화해보니 C 장로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님이 많이 위독하세요.” 전화 받는 아들의 목소리는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C 장로님과는 주재원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벌써 26년이나 되었군요. 주요 바이어들과 OEM 방식(제품에 주문자의 상표를 달아 생산 판매하는 방식)으로 거래 하려면 엔지니어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이 바이어들의 요구 수준에 맞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이어측 엔지니어와 기술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우리측 엔지니어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근무할 당시 본사를 대신해서 이 업무를 맡아주신 분이 바로 장로님이셨습니다. 샘플을 들고 함께 바이어 사무실을 자주 오가는 동안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장로님과의 대화는 대부분이 신앙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장로님의 선하신 인품과 깊은 신앙심이 보석처럼 느껴졌습니다. 3년쯤 후 뉴저지로 발령나면서 장로님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비지니스 환경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보니 연락도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가 미국 가전 업체를 매입하는 큰 변화가 생겨 2년 후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지만 업무 성격상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느라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는 동안 장로님과 연락없이 지낸 시간이 8년을 훌쩍 넘기고 말았습니다.

주님 부르심에 순종해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막상 졸업장을 들고 시카고 교계를 둘러보니 제가 설 자리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40대의 전도사가 사역할 자리라…제가 생각해도 애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믿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절 이렇게 생소한 환경으로 부르신 이유가 분명 있으실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8개월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서로의 안부를 묻던 중 장로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하나님 소명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사역자를 뽑고 있는데 지원해보시면 어떨까요? 기도하는 중 갑자기 전도사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장로님의 전화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적처럼 시작된 사역을 통해 미래 목회를 잘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병실에 도착해 의식없이 입으로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장로님의 연악한 팔을 살며시 잡는데 과거의 추억들이 주르륵 떠올랐습니다. “의사들도 이젠 손을 쓸 수 없다고 해서 어제 호스피스 병동으로 내려왔어요. 감염으로 폐에 차오르는 이물질이 결국 기도를 막게 될 거랍니다.” 장로님 곁을 사랑과 헌신으로 지켜온 K집사님이 슬픔을 눌러가며 힘겹게 말했습니다. 장로님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온 장로님의 일생이 그 자체로 걸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에 겸손하게 헌신한 주님의 신실한 종이었고, 가정도 화평했고, 또한 그런 아버지의 본을 좇아 두 아들 모두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으니 장로님은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누리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일생을 ‘하나님과 동행한 삶’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 성도에게선 짙은 향기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