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배를 담은 ‘금’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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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담임)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고문서를 보관하는 도서관 아카이브에서 일하던 대학생이 수백 년 전 문서 원본을 빼돌려 영국의 한 대학에 팔려고 하다가 발각되었다. 대학에서 받아 보니 발송 방법이 너무 허술하고 비전문적이었던 것이다. 수상하게 여긴 학교 측에서 본래의 아카이브에 연락을 했고, 결국 FBI 신고 끝에 체포되었다. 그 학생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고문서를 아무 봉투에나 넣어 발송한 어리석음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귀중한 보물을 아무 데나 보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놀랍지 않은가? 그 어리석어 보이는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 질그릇은 바울이다. 금그릇도 아니고 은그릇도 아니라, 깨지기 쉽고 하찮은 질그릇이었다. 실제로 바울은 늘 질병을 달고 살았다. 말재주가 뛰어나지 못해서 무시를 당했고, 외모도 볼품없었고, 가진 것 없었고, 게다가 진짜 사도가 아니라는 의혹과 루머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보배’는 복음이다.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다. 그 보배를 질그릇에 담으셨다. 보배와 질그릇, 극과 극이다. 둘의 조합은 모순이다. 가장 귀한 것을 가장 하찮은 것에 담으신다. 가장 큰 능력을 가장 약한 것에 담으신다. 영육 간에 강건하며 하는 일마다 성공하는 능력자가 아니라, 병치레 많고 가난하고 약하며 늘 고난 속에 있고 있는 약한 사람에게 영광의 복음을 맡기신다. 오직 하나님의 크신 능력만이 오롯이 빛나게 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보배 덕분에 자신도 금그릇이나 은그릇이 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이다.

얼마 전, 한양대 의대 신영전 교수가 <의대생은 학교를 떠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신 교수는 현재 의학교육 실패의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기성세대와 그 위 선배들에게 있다면서, 기성세대의 주요 죄목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공부만 잘하면 집안일, 학교 청소까지도 면제해 준 죄, 한 반에서 대학 가는 몇 명을 위해 수십 명의 학생들을 엑스트라로 만든 죄, 체육·음악·미술 시간을 빼앗은 죄, 새벽까지 학원 뺑뺑이 돌리고 잠 못 자게 한 죄,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오래 참은 아이가 성공한다고 거짓말 한 죄, 사춘기조차 심하게 앓지 못하게 한 죄, 장편소설 요약본만 읽게 한 죄, 3등급 이하의 아이와는 놀지도 말라고 한 죄,… 편법과 불법으로 큰돈 번 의사들을 성공한 선배로 소개한 죄…”

이 칼럼을 읽으며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 대한 목회자들과 기성 교인들의 죄목이 떠올랐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가르친 죄, 기도하면 다 해결해 주신다고 거짓말한 죄, 자녀들 중요 시험 준비 기간에는 예배 빠져도 눈 감아 준 죄, 예배 시간에 장로님 자녀 명문대 합격했다고 광고한 죄, 간증은 늘 성공한 사람만 시킨 죄, 대형교회 목회를 성공한 목회로 착각하게 만든 죄….”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질그릇이 아니라 금그릇이나 은그릇이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에 저지른 죄 아닐까? 미안하지만 하나님은 금그릇 은그릇에는 보배를 담지 않으신다. 흔히 하나님이 우리를 ‘약함에도 불구하고’ 쓰신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약함에도 불구하고’ 쓰시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쓰신다. ‘질그릇임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이기 때문에’ 사용하신다. 예수 믿어 금그릇 되고 싶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