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브라질넛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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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여러가지 견과류들과 초콜릿이 섞여 있는 트레일 믹스와 같은 제품을 먹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캐슈넛을 골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트레일 믹스가 담겨있는 통을 손으로 통통 두드리면서 흔들면 됩니다. 그럼 신기하게도 알맹이가 큰 캐슈넛들은 다 위로 올라오고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땅콩이나 초콜릿 알갱이들은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쉽게 골라 먹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브라질넛 효과(Brazil Nut effect)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견과류가 들어 있는 깡통을 흔들면 부피가 큰 것들만 위로 올라오는데 그 중에서 브라질넛이 가장 크기 때문에 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이것은 밀도의 차이에 의해서 혼합물을 분리하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브라질넛 효과가 단순히 땅콩을 골라먹는 일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과정 속에도 적용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서 종들이 곡식을 잘 심어 놓고 간사이 그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함께 덧 뿌려 놓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때 종들이 주인에게 지금 가라지를 뽑아 버릴까요? 여쭙자 주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9-30) 이제 곧 타작의 때가 다가 올 텐데 그 때가 되면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가운데서 알곡 만을 골라 가시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이야기 입니까? 지금 우리가 다 교인이요, 집사요, 장로요, 목사로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확정 짓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처럼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는 심판의 과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알곡과 가라지를 어떻게 분리해 낼까요? 이것에 대하여 침례 요한이 그의 설교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이 말씀에 보면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는 방법으로 ‘키’를 사용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브라질넛 효과와 같은 방법입니다. 키질은 오래 전부터 추수한 알곡을 티끌에서 분리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잘 영글은 콩이 주렁 주렁 달린 콩대를 낫으로 비어 마당에 세워 둡니다. 며칠 후 콩깍지가 마르면서 콩들이 터져 나오게 되지요. 그럼 마당에 너른 비닐 천막을 깔고 잘 말려진 콩대를 뉘여 놓고 도리깨로 콩을 털어 냅니다. 그런데 도리깨로 두들기는 통에 콩알 뿐 아니라 검불이나 티끌들이 함께 섞여지게 됩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콩알을 분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키질입니다. 도리깨로 탈곡한 콩을 키에 담아 키질을 시작합니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에 맞추어 키를 위 아래로 움직이자 키 안에서는 곡식 알갱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곡식알들이 하늘로 올라갔다 키 안으로 떨어질 때 알곡보다 밀도가 가벼운 검불이나 티끌은 바람을 타고 멀리 키 밖으로 날아가고 콩알만 키안으로 모이게 됩니다. 이렇듯 키는 바람의 힘과 물질의 밀도의 차이를 이용하여 쭉정이와 검불을 골라내는 기구입니다.

이러한 키질의 원리를 생각할 때 마지막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영적 키질에서 우리가 어떠해야 날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속이 꽉 차 있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꽉 차 있어야 하는가?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 중심에 가득 차 있어서 그 어떤 흔들림의 바람과 키질을 당한다 할 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날려가지 않고 구원 안에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께서는 그 안에 진리가 없는 자들이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 구원의 길에서 떠나갈 것을 걱정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사람들이 바른 교훈, 곧 진리로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쫓아 허탄한 오류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경의 말씀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가? 진리의 허리띠(엡 6:14)를 단단히 매고 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