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랑받는 자여 (My Beloved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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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목사 선한이웃교회 담임(시카고)/미육군 채플린 예비역 소령

예수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한 시기는 아마도 세례 요한으로 부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며 큰 소리가 하늘로 부터 울려퍼졌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같이 하나님이 들려주신 예수님에 대한 선언,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My Beloved Son),은 예수님 지상사역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를 성공적으로 붙들어준 예수님의 자기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선언은 예수뿐만이 아니라 인종과 종교, 문화를 넘어서서 모든 인류가 듣고 마음속에 간직해야할 하나님의 축복된 약속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안탑깝게도 이세상은 하나님의 약속가운데 사는 고귀한 인생들을 향해 교묘히 그 가치와 존엄성을 의심하도록 도전하는 시험들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신은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인간이야!” “우리는 당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당신 주제를 알아야지!”,… 끊임없이 세상에서 던져오는 수많은 시험들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혀 우리의 정체성을 의심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엔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인간이야!” 비관하게 만듭니다.

매년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천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2014년엔 1139명, 2015년엔 1040명, 2016년엔 933명, 그리고 올해는 벌서 552명이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그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맞춤형 복지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사람들속에 뿌리박힌 자기 “정체성의 부정”에 있습니다. 곧, “나는 사랑받지 못한 인간”이라는 스스로의 존엄성의 부정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40일동안 체험했던 마귀의 시험은, 사실은 그가 세례받은 직후 맞닥트린 그의 “정체성”에 대한 사단의 공격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향해 ‘돌덩이들을 떡으로 바꿔보라,’ ‘높은 첩탑에서 몸을 던져 천사가 구출하는 장면을 연출해 보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무릎 꿇게 하는 파워를 얻기위해 사탄 자신에 머리를 숙이라’ 도전였습니다. 말하자면 ‘기적’과 ‘명성’과 ‘권력’을 통해 참 하나님의 아들됨을 드러내라고 교묘히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호히 “아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간혹 우리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의 질문에 “나의 직업” “사람들의 평가” “내가 가진 파워”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때로 스스로 우쭐대기도, 혹은 자신을 비참히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사랑받는 당신”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같은 고유의 정체성은 ‘내가 하는 어떤 일’로도, ‘다른이의 비판이나 칭송’으로도,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로도 변화할 수 없는 것입니다. (I am not what I do, what people say about me, or what I have.)

예수님이 당한 사탄의 시험은 광야에서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가 예수를 버리고 돌아선 고독한 순간에도, 가장 사랑하는 제자의 어처구니 없는 배신에도,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아내며 무기력한 실패자처럼 하늘을 향해 울부짖어야했던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선언,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 (Belovedness)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이란 세상 사람들에 의해 손가락질 당하고, 버림받던 인생들 곧 왜곡된 정체성으로 고통받던 이들의 편에 서서 함께하며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 었습니다.  그는 버림받았다고 최급당하는 인생들 조차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변호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사명이 있다면, 누구나의 삶에 간직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하심(Belovedness)을 서로 일깨우며 축복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죄인의 친구가 되었던 예수님같이 왜곡된 정체성에 힘들어 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도록 친구가 되는 것(Befriend)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