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샘이 깊은 우물] 예수 표 상처자국(The marks of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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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내 얼굴에는 큰 흉터가 하나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언청이를 수술한 듯 보이지만 그 흉터는 어린 시절 동내 개구쟁이 친구들과 돌 던지기를 하다가 한꺼번에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는 돌을 미처 피하지 못해 얼굴에 맞아 생긴 흉터로 거울을 볼 때 마다 옛날을 떠올리며 개구쟁이 시절 함께 자란 동내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또 보이지 않는 발뒤꿈치에도 큰 수술 흉터가 있고 마음에도 아픈 상처와 흉터들이 여럿 있습니다. 사람마다 몸에 보이는 상처 외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감정적 심리적 상처와 영적인 상처들이 있습니다. 부상, 화상, 사고, 수술, 출산, 루머(rumor), 가십(gossip), 배신, 헤어진 연인, 인신공격, 부모나 부부 또는 자녀들과의 관계, 교회에서 입은 상처와 흉터 등 모양과 크기가 다른 상처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몸에 있는 상처와 달리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들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친 상처나 수술 상처는 치료가 가능하나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약으로도 수술로도 세월이 지나도 치료가 불가능하여 무덤까지 간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자국을 지고 다닙니다.”(갈 6:17)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상처자국(the marks of Jesus)은 복음을 전하다 받은 상처들을 말합니다. 바울의 상처자국은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또 세 번이나 몽둥이로 맞았고 한번은 돌에 맞았으며 세 번이나 파선하였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헤맨 일도 있었습니다.… “(고후 11:24-27)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사건 현장이 떠올라 닭 살이 돋고 머리가 흩트려 지는 듯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처럼 ‘예수 표 상처자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표 상처자국’야 말로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가치를 지닌 영광스러운 상처이며, 최고의 자랑거리로 다른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예수 표 상처자국’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되어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5)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갈보리 산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신 상처를 가지셨고 옆구리를 창에 찔려 온 몸에 다섯 군데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 줌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 얼마나 더 크고 위대한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우리 구원의 증거입니다.

짐승들은 소유나 소속을 구분하기 위해서 귀나 엉덩이 혹은 등판에 문신(mark)을 세기고, 종들도 소유를 표시하는 문신을 몸에 새겼습니다. 부족 표시로 문신을 세기는 인디언도 있고 그렇게 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갱단들은 충성과 맹세의 표시로 몸에 문신(tattoo)을 그려 넣고, 연인들 사이에도 서로 사랑을 변함없이 이어가자고 상대방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자기 몸에 세기기도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육체적인 상처나 정신적 감정적 혹은 심리적 상처 이외에 영적인 상처가 있습니까? 만일 있으시다면 자랑스러운 상처로 하늘나라에서 면류관과 바꿀 영광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에게 영적인 ‘예수 표 상처자국’(the Marks of Jesus)’이 없으시다면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혹시 세상에서 죄를 즐길 때 사탄이 자기 거라고 살짝 새겨놓은 ‘사탄 표 문신(tattoo)’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