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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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2016년 미국 대선시에 어떤 목사가 목사와 교회를 향하여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창출하자고 도전하였다. 그 때만 아니라 언제나 해당하는 일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 희망자 20명은 공개토론회에서도 다른 사람을 폄하하고 비판하며 공격하였다.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남의 제품에 대하여 같은 태도를 가진다. 뉴욕시 주택가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할 때 교회가 성장하며 활발해지고 어린이도 많아지자 불편을 느낀 주민의 한 사람이 나를 향하여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내뱉았다. 정치나 사업의 이해관계가 아니라도 인종 외모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을 욕하고 비난하며 소외시킨다. 얼굴을 보며 하지 못해도 트윗이나 이메일의 악플 언어폭력으로 남의 인격을 손상하고 죽이는 일을 한다. 서로 대립하고 갈등 투쟁하며 원수가 된다. 가정에서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지 못하여 가출과 이혼이 일어난다. 많은 총기 집단살해의 배후에는 인격체로 존중 받지 못한 아픔이 있다. 문화사회가 밀림의 야수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형편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며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이 중요하다. 나 홀로가 아니라 함께 살며 서로가 필요를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존중 받는 권리를 가지듯이 다른 사람도 꼭 같은 권리가 있다.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지으시고 사랑하시듯이 그도 하나님이 만드시고 사랑하신다. 예수께서 나와 같이 그도 사랑하여 생명을 바치셨다.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배양할 것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 황금률인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 남을 대한다. 이민자는 각자가 능력과 재주가 많지만 상대방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관계가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다. 교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중의 하나가 그들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다 (사43:4)는 말씀을 따라하게 하고 그리고는 옆에 또 앞 뒤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입니다 말하며 악수를 하게 한다. 말하는대로 행동하고 대하면 관계는 달라진다.

실천하기 어려운 때는 모방을 한다. 예수께서는 당시 성인사회에 자리가 없는 어린이를 가슴에 안고 축복하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시다. 그는 금기지역 사마리아에 들어가 물을 길러 온 한 여인을 만나자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모두 알면서도 그에게 하나님 예배에 관한 핵심을 설명하였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고 사랑하신 것이다. 성경은 형제를 사랑하며 존중하기를 서로 먼저하라 (롬12:10).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게 된다 (요13:35) 하신다.

남미의 한 청년이 미국에 와서 대학공부를 하고 살다가 마약을 하며 노숙자가 되어 셸터에 있던 중 어느 목사를 만나 하나님 사랑의 인격 대우를 받으며 자기를 새롭게 발견하고 변화가 왔다. 직장을 얻고 봉사를 하며 성경공부와 기도에 힘쓰더니 선교사로 가라는 주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며 헌신하여 지금 필립핀에서 고아 사역과 함께 교회 사역을 힘차게 하고 있다. 인격 존중과 사랑은 복음을 빛나고 매력 있게 한다 (딛2:10). 가정과 교회, 사회가 매력이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