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교적 교회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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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목사(다솜교회 담임)

무식엔 약도 없다는 말이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가 한국일보 칼럼을 다시 시작하면서 선교적 교회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일종의 참회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떼고, 시카고에 위치한 다솜교회의 목회자로 부임하면서 꿈을 꾸었던 것은 “An Exemplary Diaspora Church”를 세워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선교사 출신의 경험과 애틀랜타에 위치한 대표적 한인교회인 연합 장로교회에서 선교 협동 목사로 사역하면서 목회를 배운 경험, 그리고 세계전문인 선교회(PGM)의 훈련원장으로 미국, 중국, 영국 등의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의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를 훈련하였던 경험은 모두 이 비전을 위하는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민 사회라는 상황에서 하나의 모델이 될 만한 선교적 교회를 목회하고자 하는 비전은 여전히 필자의 마음에 불타고 있다.

한편 이러한 꿈을 꾸면서도 필자 자신이 자신의 꿈에 대하여 조차 무식하였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펜데믹 상황에서 필자가 자기 발전을 위해 공부를 더 할 수 있도록 도우시면서 자신의 무식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우신 것에 감사드린다.

필자의 무식함이 깨어진 점을 한 줄로 딱 정리하자면,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선교학 또는 선교 신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적 관점에서 말하는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교적 교회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며, 선교적 교회는 어떤 모습의 교회를 일컫는 것일까? 필자가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서 한국일보 독자들과 나누면서 배우기를 원하는 것이다. 오늘 이 첫 글에서 아주 쉽게 선교적 교회를 설명한다면, 선교적 교회란 ‘그 교회가 위치한 사회에서 선교사로서 존재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마운트 프로스펙트에 있는 다솜교회가 마운트 프로스펙트와 그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선교사와 같은 교회라면, 그것은 다솜교회가 선교적 교회라는 분명한 증거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으로 보내셨듯이, 주님이 우리 교회를 이 땅 가운데로 보내셨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선교사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주님의 보내심을 생각할 때 필수 불가결한 교회됨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 회복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시카고 땅에 많은 선교적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기를 그리고 이미 이 땅에 세우신 교회들이 그 본질을 회복하는 날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