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교적 교회와 우상숭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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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목사(다솜교회 담임)

선교적 교회는 ‘사회적 우상숭배와 맞서야 한다’ 고 팀 켈러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사역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우상숭배를 대하는 태도는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 목사님은 바울 사도가 로마서 1장에서 우상숭배에 대하여 논의할 때는 매우 신랄하며, 비판적이고,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불호령처럼 선언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바울 사도가 루스드라, 아덴, 그리고 에베소에서 전도를 하면서 우상숭배자들을 만났을 때는 로마서에서 쓰셨던 표현보다는 훨씬 더 누그러진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크리스토퍼 라이트 목사님은 로마서의 독자는 기존에 믿던 성도들이며, 루스드라와 아덴과 에베소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아니고, 아직도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살던 성도들이 우상숭배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에는 신학적으로 통렬한 비판과 함께 우상숭배가 얼마나 악한지, 얼마나 세상을 오염시키고 타락시키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가는지를 낫낫이 고소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반면 아직도 우상을 섬기고 있는 전도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헛된 우상숭배를 버리고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설득하지만, 로마서에서처럼 신랄한 비판과 정죄를 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 사도가 여러 우상 숭배가 만연한 지역에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지만, 그 도시의 주민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모독하거나, 비난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에서의 바울 사도의 사역은 그 지역 사회의 우상숭배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영향력이 컸고, 이에 더메드리오를 비롯한 은장색 즉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시위를 일으킵니다. 그 때 에베소시의 서기장은 소요를 가라앉히려는 목적으로 바울을 변호하게 되는데, 그는 바울이 ‘한번도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자신들의 여신을 비방한 일이 없다’ 고 말씀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혹자는 엘리야의 갈멜산에서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을 기억하면서, 그런 종류의 능력 전쟁 (power encounter)가 필요하다고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경우에도, 그 싸웠던 대상들이 이교도 이방인들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우상 숭배에 빠진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것이었으며, 혹 그 메시지가 이방 나라를 향할 경우에는 그들이 믿는 우상을 공격하기 보다는, 이방인들의 도덕적, 사회적 타락을 지목하며, 이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년 사이에, 불교 사찰의 경내를 돌면서 땅 밟기 기도를 한다거나, 사찰을 훼손하는 등의 일들이 자주 발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봐왔습니다.

선교적 교회는 사회적 우상숭배와 맞서지만, 파괴적 공격의 방식이 아닌 사랑의 전쟁으로 맞서는 교회입니다. 우상숭배에 단호히 맞서지만, 그 우상숭배에 여전히 빠져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배려하고, 또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는 자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