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경 속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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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선 목사

성서 속에 소의 이야기 중에 대표적인 경우는 출애굽기(32:1-4)에 나오는 ‘아론의 금송아지’와 사무엘상(6:7)에 나오는 ‘두 마리 암소’를 들 수 있겠다.

전자는 이스라엘민족을 애급의 학정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후 그의 내려옴이 늦어지자 초조한 백성들이 아론을 위협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출32:1)고 압박하자, 무리들의 금붙이를 수거하여 이를 녹여 금송아지를 새겨 만들고 그 금송아지를 그들의 신이라고 제사를 드리며 섬긴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사사시대의 말기 실로의 제사장 엘리 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해 엘리의 두 아들은 전사하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다는 비보를 들은 엘리도 의자에서 낙상하여 죽었고, 블레셋은 법궤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갔으나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견디다 못해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 위하여 새 수레에 실어 젖 먹는 새끼를 때어놓은 두 마리 암소에게 끌고 가게 한 것에서 시작된 사건이다.

2021년은 태음력으로 소띠의 해 신축(辛丑)년이다. 소에 대한 숫한 에피소드(episode)는 신정(新正) 때부터 이미 들어왔지만, 필자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아론의 금송아지’와 ‘두 마리 암소’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론의 금송아지는 십계명의 1, 2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죄악에 아론이 깊숙이 관여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부 교역자들이 삯군으로 전락하여 돈을 사랑하고, 명예를 좇으며, 도덕적 부패에 빠져 새로운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으니, 이는 현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경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마리 암소에서 주목되는 것은 젖먹이를 때어놓은 본능적 고통을 울면서 참으며, 그들의 길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갔다는 것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벧세메스에 도착했을 때 백성들은 수레를 패 화목을 삼고 암소들을 잡아 여호와께 번제로 드려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크신 뜻을 헤아려 본다. 그 당시 불레셋 에그론에 많은 소가 있었을 터인데 위의 두 암소가 뽑혔다는 것을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믿으며, 사명을 완수 한 소들이 최후에는 제물로 바쳐진 것은 역설적으로 본다면 미물인 두 암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된 지고(至高)의 은택이라 할 것이다.

요단강가에서 세례요한이“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을 본 것처럼, 위의 교훈에서 메시아의 그림자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mymilal@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