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탄절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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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시카고)

 

새벽 예배 길 무디 방송을 듣는데, 성탄절의 감동을 일깨워주는 것들이 뭐냐고 묻더군요. 여러 단어들이 가슴을 스치는 동안 영혼이 따뜻해졌습니다. 12월 첫 날의 일이었습니다. 수요 사랑방도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군불을 지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뭔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물론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다음으로’라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각자 기억의 방으로 들어가 추억의 사진첩을 들추어보며 따스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랑방 식구들이 들고온 추억들은 다양했습니다.

“여고 시절 학생부에서 준비하던 문학의 밤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달여 정도를 준비했는데 지금도 그 설레임이 고스란히 제 마음에 살아있어요. 그때 함께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던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며 지냅니다. 한국 방문할 때면 꼭 만나고 올 정도로 친하게 지냅니다.”

“아버님께선 목회하시면서 동시에 고아원도 운영하셨어요. 다 전쟁 고아들이었지요. 하루는 고아원 앞에 커다란 미군 트럭 10대가 줄지어 서더군요. 그러더니 미군들이 나와서 원생 모두와 우리 가족을 태우고는 부대로 데리고 갔어요.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한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식탁에는 생전 처음보는 음식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날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매년 성탄절만 되면 미군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고아들을 섬겨주었지요. 그들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뭔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따라오라고 소리치는 친구들 뒤를 무작정 좇아 어떤 천막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천막 안 풍경은 낯설었지만 기분은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이 노래(‘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생전 처음 초콜렛을 받아 먹었고 친구들과 함께 잠시 그 교회 주일학교를 다녔어요.”

“매년 성탄절즈음 해서 카드를 보내주는 성도님이 계세요. 10년 이상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내주는 그분의 카드 내용은 아주 특별해요. 사진과 함께 아주 상세하게 기록한 가족들의 일년 행적이 담겨 있는 거예요. 자녀들의 성장 과정에서 발견한 특기 사항, 가족들의 여행이야기, 주변 가족들의 근황 등. 깨알같은 내용을 읽다보면 ‘이 카드를 받는 당신도 내 식구입니다.’라는 고백을 듣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지지요. 그래서 매년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나도 모르게 그분의 카드를 기다리게 됩니다.”

“성탄절만 되면 몇 년 전 보았던 동영상이 생각납니다. 어떻게 담았는지는 모르지만 북한에서 신앙 생활하는 한 여자분의 고백을 담은 영상입니다. 심한 이북 사투리로 기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기도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주님, 우리는 왜 성탄절에도 마음 놓고 찬송 한 곡 부를 수 없는건가요. 우리에게도 맘껏 예배드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꼭 이루어주세요.” 거의 통곡하다시피 드리는 여인의 기도가 성탄절만 가까워지면 생각나고 그래서 조국 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추억을 군불 삼아 사랑방을 훈훈하게 뎁힌 후 동방 박사 이야기가 담긴 마태복음 2장의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유대의 왕이 태어났음을 알려주는 신비한 별을 따라 드디어 베들레헴에 도착한 박사들과 함께 넘치는 기쁨으로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린 은혜로운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