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금 한 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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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주님께서 세상의 소금이 되어 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소금의 역할과 기능적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그 역할과 기능이란 첫째로 방부제의 역할이었습니다. 죄로 썩어가는 세상을 구원으로 이끌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두번째는 맛을 내는 것입니다.  살맛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맛을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소금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소금이 그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부뚜막에 소금도 넣어야 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소금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음식 속에 녹아져 들어가야 소금의 기능이 발휘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산상수훈의 말씀을 보면 소금의 교훈은 팔복의 마지막 가르침 이후에 주어진 것입니다. 팔복의 마지막이 무엇이었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의를 인하여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박해와 핍박을 피하여 세상을 떠나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하며 온갖 손해를 당해도 이 사회로부터 물러나거나 세상을 등지고 살면 안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물러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세상으로 들어가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라는 것이다. 이런 소금의 역할에 대하여 마가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 하시니라” (막 9:5) 마가는 소금의 역할과 기능이 발휘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할 것은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 하라고 권면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사람들과 어울려, 그 안에서 하나되고 그들과 화목하여 사는 소금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람들 안에 들어가서 부패되고 썩어져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회복하게 할 수 있는 삶의 자세는 사랑입니다. 무미 건조한 인생애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신앙인의 자세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조미료라는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아내가 매우 귀하게 여기는 조미료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장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그 항아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던지 남편 조차도 절대 손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항아리 속에 있는 특급 조미료가 궁금해지 남편이 몰래 항아리를 열어 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기대했던 조미료는 없고 한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쪽지는 장모님께서 아내에게 남기신 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무슨 요리를 하든 사랑을 뿌려 넣는 것을 잊지 말아라. 특히 네가 힘들 때는 이 사랑의 조미료를 꼭 사용하도록 하여라.” 그제서야 남편은 깨닫게 되지요.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아내가 그 조미료를 사용 했었다는 것을요. 바로 사랑의 조미료.

‘한 꼬집’이라고 하면 엄지와 집게로 집어 올린 양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 말이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영어의 ‘pinch of salt’란 표현을 한 번역가가 ‘소금 한 꼬집’이라고 처음 사용했는데 아마도 ‘pinch’가 ‘꼬집다’라는 뜻이어서 이 말을 ‘꼬집’이라고 번역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 꼬집의 양은 매우 적습니다. 그런데 그 한 꼬집이 들어가면 음식 맛이 달라집니다. 바로 이 소금 한 꼬집의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가정에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십니까? 부부 사이가 행복하고 포근 하기를 원하십니까? 자녀들과의 관계가 화목 하기를 원하십니까? 일터가 즐겁고 활기차기를 원하십니까?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 신뢰 할 만한 관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이웃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싶으십니까? 소금 한 꼬집, 곧 사랑 한 꼬집을 넣으시기 바랍니다. 그 소금 한 꼬집이 들어가면 맛이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