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득주도 성장론과 종전선언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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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교/시카고애국포럼

지난 10월 18일 시카고 평통 출범식에서 수석부의장으로 있는 이석현은 미하원 외교위원인 ‘브레드 슈나이더’ 하원의원을 만나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요청을 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종전 선언이 비핵화로 가는 입구가 될 것이고, 종전선언 이후에도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석현의 이 발언에서 우리는 인과론적으로 중대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종전선언이 비핵화로 가는 입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그의 원인과 결과를 바꾼 ‘비핵화가 종전선언과 평화로 가는 입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중 어느 쪽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석현의 발언을 대하면서 필자는 문득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경제법칙을 무시한 문정권의 엉터리 정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교묘히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판단능력을 흐리게 하는 사기에 가까운 정책을 또 다시 시도하려는 저들의 무모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양극화 해소와 경제체질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시도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에 심각한 경기 침체와 하위 소득계층의 가계소득이 저하되어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알바 자리조차 구하지 못한 20대 여성의 자살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또한 전체 취업자 중 20%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의 삶이 급격히 피폐해 지면서 사장이 알바를 대신해 직접 뛰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문정권이 밀어 부치는종전선언에 대한 이석현의 발언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질적으로는 남한과 상대가 안된다고 하지만 130만의 병력중 70% 를 휴전선 근처로 전진배치하며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종전선언을 하면 당장 평화의 문이 열리는 양 호들갑을 떠는 이석현의 발언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나를 죽이겠다고 벼르며 흉기를 손에 든 깡패와 그저 악수 한번 한다고 나의 안전이 보장될 것인가, 아니면 경찰의 간섭하에 그 흉기를 빼앗고 그 경찰이 깡패를 감시해 줄 때 안전이 보장될 것인가. 어찌 국회의원을 여섯 번이나 한 사람이 문재인 밑으로 들어가 초등학생이나 일반 필부보다도 못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안보를 무너뜨리는 가장 위험한 일 중의 하나는 ‘Wishful Thinking’이었다. 내가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도 호의를 갖고 나를 대해 줄 것이라는 그릇된 망상이다.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이 알아서 핵무기를 철폐해 줄 것이라는 주장은 치매에 가까운 망상이며, 이를 추진하다가는 조국 대한민국의 안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종전선언이 실현된다면 지금도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좌파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 것이며, 이석현은 종전선언 후에도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종전선언이 되면 법적으로 휴전상태를 관리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는 사라지게 되는데, 한반도에 유엔군이 있는 것과 미군이 단독으로 있는 것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미국을 중심한 자유진영이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쿼드를 결성하고 그 핵심으로서 유엔군 사령부를 강화하는 노선을 견지하는 이 시점에, 유엔군 사령부 폐지라는 결과가 뚜렸한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문정권을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어떠한 시각으로 볼 것인가. 아마도 친중정권 내지 동맹에 협조하지 않는 믿지 못할 정권 정도로 보게 될 것이며, 자유진영으로 부터 따돌림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자유진영으로부터 이탈하여 친중종북의 길로 들어선다는 의미의 코렉시트(KOR EXIT)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는 요즈음, 종전선언 추진의 로비단체로 전락한 평통을 씁쓸히 바라보는 미주 동포사회의 우려가 차가와진 날씨와 더불어 절실히 다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