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명과 기도

1223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이 바벨론에게 패망할 당시의 모습, 즉 불타고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선 느헤미야의 특별한 기도를 듣고 그를 예루살렘 성 재건의 리더로 세우십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이뤄달라고 믿음으로 끈질기게 구합니다. 당시 페르시아 왕의 은혜를 입어 자신이 직접 예루살렘으로 가서 무너진 성을 재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겁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 관리였습니다. 술 관리는 왕이 마시는 술에 독이 들어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술 관리는 왕이 가장 신뢰하는 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감당하고 있는 인물을 그 보다 덜 중요한 일을 맡겨 자리를 비우게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인 겁니다. 그래도 느헤미야는 왕의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금식하며 떼쓰고 있는 겁니다. 느헤미야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납니다. 시간입니다. 기도한지 넉 달이 지나도록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응답없이 한 주 두 주 정도만 지나도 대부분 ‘이건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가 아닌가 보다.’, 또는 ‘내가 무리한 기도를 했나 보다.’ 생각하고는 포기해버리는 겁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넉 달 동안 지속된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의 변함없는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선 그의 기도를 끝내 이루어주셨습니다. 왕의 입술을 열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묻게 하심으로 응답해주신 겁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삶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동시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믿고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왕이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께 말없이 기도드렸습니다. 넉 달 동안 깊이 간구해온 기도 제목입니다. 그러니 그의 머리 속에는 예루살렘 성 재건을 위한 완벽한 계획이 담겨 있었을 겁니다. 입만 열면 주르륵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왕의 질문에 잠시나마 침묵한다는 건 불경스레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먼저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뒤이어 왕에게 대답할 자신의 입술을 주관하셔서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을 겁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당신의 성품을 온전히 믿고 드린 느헤미야의 기도는 넘치도록 응답되었습니다. 왕을 통해 그를 예루살렘 성의 총독으로 세우셨고, 성 재건에 필요한 모든 걸 공급해주신 겁니다. 

로마서 6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왕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거룩한 소명은 그 크기와 종류가 다를 수 있지만 소명이 없는 자는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소명의 싸이즈와 종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명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이는 소명이라 할지라도 이뤄질 것을 믿고 끝까지 간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성품을 굳게 믿고 기도한다면, ‘나’를 도구 삼아 당신의 뜻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모두가 체험하게 될 겁니다.

모두가 이 땅에서의 짧은 삶을 그렇게 보람되게 세워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