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통과 문화 3: 언어적 그리고 비언어적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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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목사/다솜교회 담임

 

사람들은 소통을 위해서 다양한 수단을 사용합니다. 과거에는 주로 언어적 의사전달을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전통적인 한국 문화에서도 사람됨의 평가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의 네 가지를 통해서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네 가지 중 두가지 즉 말씨와 문필이 언어적 의사소통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어서, 사람됨에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일차적인 수단으로서 언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 옛 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언어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20세기 들어서면서 미국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비언어적 의사전달방법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오케스트라 모델을 제안했는데, 이 모델은 의사소통은 “말, 제스처, 눈길, 몸짓, 개인간의 거리간격과 같은 여러가지 의사전달경로를 통합하는 끊임없는 사회적 과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소통에 있어서 언어적 소통 수단이 필요한 것을 인정하지만, 소통에 있어서 특히 대인간의 소통에 있어서는 말의 내용보다는 말하는 방법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 중에 ‘옷이 날개다’라는 속담이나 ‘못 입어 잘난 놈 없고 잘 입어 못난 놈 없다’는 말은 다 비언어적 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금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말과 글이라는 수단 뿐만이 아니고,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수단 즉 음성 (음색, 억양, 리듬, 말의 속도, 말과 말 사이의 공간)과 비 음성(제스처, 얼굴표정들, 태도와 자세) 등의 중요성도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 살아가는 이민자들 중 꽤 많은 분들이 겪는 아픔 중의 하나는 아마도 자녀들로 인한 아픔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허리가 휘도록 일해서 자식들을 대학, 대학원 보내 길렀는데 그 자녀들이 부모와 담을 쌓고 지내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경우에 그 문제는 소통의 결여 또는 비효율적이거나 파괴적인 소통이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어를 쓰는 부모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자녀들 사이에 언어적인 장벽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소통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소통에 동원하는 비언어적 소통의 수단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흥분하고 화가 난 음성, 강압적인 말투, 험악한 얼굴 표정, 그리고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렸던 체벌까지… 자녀들의 마음을 닫게 만들고 부모를 떠날 만큼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은 어쩌면 부모의 말이 아닌, 부모님들에게서 보았던 비언어적인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비언어적 소통의 수단들이 소통을 단절하거나 또는 파괴적인 소통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똑 같은 현상이 교회에서도 그리고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건강하고 성공적인 소통을 원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을 잘 선택하여야 하겠고, 태도, 몸가짐, 억양, 얼굴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