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슬기로운 교회 생활

842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쓴 편지에서 성령 충만한 성도의 교회 생활은 특별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교회 모임 중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는 각각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그냥 묶어서 하나님을 주제로 한 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를 우리는 대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과 형식은 하나님을 주제로 한 시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섬기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예배가 끝나고 친교의 자리에 내려갔을 때 주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교회 밖에서의 만남에서 나누는 대화는 어떤가요. 물론 모든 대화가 성경 말씀, 교회 사역만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 특별한 사회적 이슈들을 대화의 소재로 삼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단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셔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일상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일상을 통해 주신 교훈들, 사회적 이슈를 통해 주시는 기도의 부담 등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특별한 사람들인 겁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모인 모임도 세상 모임과는 구별된 거룩한 모임,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회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양을 드립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말씀입니다. 찬양팀과 성가대를 섬기는 분들만 아니라, 예배 때 함께 찬양을 드리는 성도 모두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예배자 모두가 온 마음을 다해 주님께 찬양을 드릴 때,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은혜의 예배가 될 겁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항상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 그 십자가 사랑을 항상 기억하라는 겁니다. 우리 모두에게 임한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한 순간도 마를 수 없다는 걸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충만한 성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합니다. 여기서 복종의 의미는 예수님 때문에 스스로 양보하고 낮추는 태도를 말합니다. 성경 말씀은 곳곳에서 믿음의 성도 안에는 하나님께서 거주하신다고 증거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과 6장에서는 믿음의 성도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지성소가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다고 증거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말씀도 우리를 질그릇으로 예수님을 보배로 비유한 후, 우리를 보배이신 예수님을 담고 있는 질그릇이라고 증거합니다. 요한일서는 여러 곳에서 믿음의 성도 안에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거주하신다고 증거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이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 한 식구가 된 형제와 자매를 대할 때, 그들 안에 거하고 계신 예수님을 보고 존중하는 겁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서로를 향해 가져야 할 이런 태도를 빌립보서에서는 “남을 나 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는 ‘복종’이라는 더 강력한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종이 되어 형제와 자매를 섬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종의 자리로 내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몸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내’ 교회 생활은 어떻습니까? 과연 성령 충만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