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비한 만남 기대되는 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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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시카고)

 

이번 비전 선교에서 만난 윤경모 선교사님의 간증은 드라마틱했습니다.

유한 킴벌리에 다니고 있을 때, 맏형이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런데 형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끝내고나면 다른 사역은 전혀 감당할 수 없었던 형이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나머지 교회 사역 전부를 맡아달라는 겁니다. 아픈 형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순천에서 서울까지 주말마다 출퇴근 했습니다. 형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어 급기야 설교도 준비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면 교회를 닫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끝까지 교회를 지키겠다는 성도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형이 말했습니다. “네가 신학교에 가서 이 양들을 돌봐야겠다.” 처음엔 목사의 소명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이유로 펄쩍 뛰며 저항했지만, 교회의 양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신학교에 입학합니다. 직장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학기를 남겨두고 학교를 그만 둡니다. 여전히 주님의 소명을 확신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후 과거 인연을 기초로 유한 킴벌리에 생리대를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합니다. 이때 결혼하고 사랑하는 딸 조이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15년쯤 지났을 때 “널 선교사로 사용하길 원하다”는 하나님의 강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분명한 부르심 앞에서 선교사님은 당장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처음엔 캄보디아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캄보디아로 비전 선교를 다녀온 후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 선교사님 중 가장 먼저 절 불러주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드디어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뜻밖에 온두라스였습니다. 싱글맘들을 돌보는 모자원을 운영하고 있는 선교사님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중 전화를 받았으니 주님 뜻이라 믿고 순종했습니다. 6년 전입니다. 그런데 일년만에 모자원에서 나와야만 했습니다. 크게 낙담했습니다. 온두라스 땅에서 뭘 해야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풍토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몸을 보면서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도 병명을 몰랐습니다. 몸은 계속 말라가고 거의 뼈만 남게 되었습니다. 병문안을 온 성도들도 앞에서는 금방 치유될거라고 위로하고는, 병실을 나서면 “선교사님 죽을 것 같네. 불쌍해서 어쩌나.”라고 말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이 터닝 포인트가 됩니다. 이때 주님께서 곁에 오셔서 “나만 믿고 담대하라”고 말씀해주신 겁니다. 신비한 이 만남 이후 선교사님은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병원도 치료법을 발견했습니다. 블러드 샘플을 미국으로 보냈고, 미국에서 중남미 풍토병이라는 사실과 치료 방법을 보내온 겁니다. 회복되어 온두라스로 돌아온 선교사님은 선교사들이 외면하고 찾지 않는 지역을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인도로 5년째 수야빠라는 도시 빈민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선교사님의 만남도 드라마틱합니다. 2년 전 과테말라로 선교 갔을 때 조이가 통역을 도왔습니다. 통역을 곧잘하고 항상 웃는 모습이라 선교팀이 다 좋아했습니다. 그때 조이를 통해 선교사님을 알게 된 겁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선교사님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때 조이가 통역을 맡았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과테말라로 어학 연수간지 4개월밖에 안 된 때였거든요.”

참 신비한 방법으로 선교사님을 온두라스까지 인도하시고 또 우리 교회와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 동역을 통해 어떤 놀라운 일을 펼쳐가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