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수를 용납해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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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 교회)

 

한국의 한 영화배우가 공개강좌에서 본인이 첫 연극 무대에 서게 될 때, 연출자가 모든 배우를 불러 모으고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실수하세요. 무대 위에서 실수하세요. 나는 무대 위에서 실수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실수하지 말아야 한 연극무대에서 도리어 연출가는 배우들에게 실수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연출가는 “실수 안 하려고 하면 더 큰 실수를 하거든요. 딱딱하게 보여요. 로보트같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연기하는 배우는 실제로 기계같은 연기를 하기 때문에 도리어 안 하느니 못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차라리 실수를 하더라도 연극을 즐기면서 편하게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회들이 참으로 힘들다고 한다. 이민자들의 숫자가 줄어 교회는 제살깎아 먹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고 성도들의 경제적인 삶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부분의 이민교회는 구성원들의 고령화로 내일의 비전을 꿈꾸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더욱 교회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것은 교회분란과 다툼이다.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 성도들의 문제와 잘못으로 교회가 분쟁을 겪고 갈라지고 작아지며 사라져가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분쟁과 다툼의 문제를 살펴보면, 작은 실수와 오해에서부터 시작된다. 잘 설명하고 풀어내면 문제의 해결을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그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오해를 풀지 않으려고 한다.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색한 연기를 하고 기계와 같은 배우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한 연극 연출가의 말대로, 교회도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오해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교회공동체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의 영적 모임이 될 것이다.

괴테는 “실수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회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해 불완전한 인간이 모인 곳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는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 실수와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다룰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민교회는 작은 실수와 오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풀어낼 수 있는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서로 정답이 없는 싸움을 하다 교회를 망치고 성도들을 시험에 빠뜨린다.

교회는 예수로 인해 완전해 질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보혈로 세워진 교회를 지켜내고 보호하는 것이다. 인간이 교회를 완벽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연극에서 실수없이 연기를 하려고 하는 기계와 로보트같은 배우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극은 가짜 연출일 뿐이다.

우리는 때로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실수를 얼마나 잘 용납하고 수용하며 인정하느냐가 중요하다. 특별히 교회는 이제 그런 작은 실수와 오해에 대해서 어떻게 용서를 구하며 어떻게 용납하고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적 대안을 제시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척 하는 인간들의 모임을 만들거나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적인 순혈 종교인을 만드는 곳이 교회로 불려서는 안 되며, 작은 실수를 용납할 수 있는 관용과 오해를 신앙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화해의 능력을 보여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교회의 회복은 이름난 강사를 모시거나 교회를 건축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또 다시 실행하는 것으로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 안에 실수를 용납하는 힘을 기르자. 교회 안에 오해가 될 일들을 관리하고 이를 가장 풀어낼 수 있는 공동체적 해답을 찾자. 실수를 용납하고 오해를 건강하게 풀어내는 교회가 부흥하게 됨을 보여주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