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쓰레기 처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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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감사의 계절에 여러가지로 감사하는 중 쓰레기 처리에 대한 감사가 있다. 매주 한 번씩 집안의 쓰레기를 모아 밖에 내어두면 트럭이 와서 이렇다 저렇다 묻지 않고 모두 싣고 내 눈에 보이지 않은 곳으로 간다. 그 쓰레기는 우리 집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만일 쓰레기 수거가 없다면 집이 냄새로 차고 이웃은 쓰레기 범벅이 될 것을 생각하면 쓰레기 처리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쓰레기 처리는 개인과 가정, 세계의 큰 과제다. 가정마다 쓰레기를 버리는 양이 많다. 미국인 평균 하루에 내는 것이 2킬로그램, 미국 전체에서 나오는 하루 쓰레기는 72만8천톤이다. 년간 플라스틱 병은 220억개, 사무실에서 나오는 종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 만하탄까지 12자 높이 벽을 쌓을만한 양이라 한다. 가정에서 수거한 쓰레기는 일부 재활용으로 처리되나 대개는 2434곳의 매립지에 묻지만 냄새와 유해 메탄가스로 대기를 오염시킨다.

땅만 아니라 강과 바다도 쓰레기로 덮인다. 가장 큰 쓰레기 플라스틱이 매년 8백만톤씩 바다에 들어가고 이미 있는 1억5천만톤 플라스틱 쓰레기와 합류한다. 거북 고래 물고기 갈매기 등이 플라스틱 조각을 음식으로 알고 먹고는 죽는다. 땅과 물만 아니라 우주 공간 지구 궤도에 10센티 이상의 쓰레기가 1만4천, 추적 가능한 우주 쓰레기가 2만2천이라 한다. 위성을 폐기처분하고 위성을 파괴하거나 위성이 충돌하여 생기는 것이다.

쓰레기는 이제 인간의 삶,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형편이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기술이 개발될 것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쓰레기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쓰레기의 주범은 바로 사람, 인간이 쓰레기를 생산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쓰레기로 채워져 있다. 쓰레기는 본래의 용도를 떠나 인간 삶의 요구를 벗어난 것,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진 것, 쓸모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자기를 개발하지만 용도를 찾지 못하여 버려지고 잊혀진 상태에 있는 자가 많다. 그가 들어가 일할 자리나 사회에 끼어들 자리가 없어 시달리는 자들이 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도 많다. 범법자로 판단되어 사회와 격리된 자가 감옥에 가득하다. 이들은 세상의 용납을 받지 못하는 버려진 존재로 여겨진다. 만물의 찌꺼기 같이 생각된다.

누가 이들을 받아주거나 재생하나? 예수께서 이런 사람을 받아주신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 죄인으로 취급되는 특정 직업인, 눌림 당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참 자유를 주고 살아나게 하신다. 오늘도 주를 만남으로 세상에 유익을 주는 새 삶을 사는 자가 많다.

사람은 속에서 여러 죄를 생산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마음이요 (렘17:9)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에 (창8:21)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자기 중심이요 남을 용납하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곧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이라 이런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15:18-20). 삶을 죄악의 쓰레기로 채우면서 자기는 깨끗하다고 하는 자가 많지만 죄를 인정하고 예수께로 향하면 그는 모든 더러운 죄를 깨끗이 처리하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 죄의 모든 쓰레기를 대신 처리하고 우리를 깨끗하고 의롭다고 하시기에 이로 인하여 감사하며 주를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