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쓴맛을 허락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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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사람들은 인생살이의 여러 경험을 맛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합니다. “쓴맛 단맛 다 봤다” “매운 맛을 봐야 한다”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봤다” 등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평생 맛과 함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맛의 구분은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이 네 가지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네 가지 기본적인 맛에 후각, 촉각, 온도 감각이 더해져서 다양하고 복잡한 맛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맛감각은 네 가지가 전부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각, 즉 통증입니다. 인생에도 네 가지 맛이 골고루 존재합니다. 일평생 단 맛만 즐기며 사는 사람도, 쓴 맛으로 고생만 하며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맑은 날이 있으면 궂은 날이 있듯이, 단 맛과 쓴 맛이 함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출 15:22-24) 출애굽기의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쓴맛을 허락하신 기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 수백 년 계속된 노예의 속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도 전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 그들 앞에 인생의 고난, 곧 쓴맛의 날들은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서 직면한 첫 번째 사건이 바로 마라의 쓴 물 사건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들어서자마자 이런 쓴 경험을 해야만 했을까요? 그들이 무엇을 잘못 했을까요?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했을 때조차도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이 원망을 했을 때는 마라에 도착해서 쓴 물을 맛보고 난 이후입니다(출 15:24). 그렇다면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쓴 경험을 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쓴맛을 통하여 배워야 할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험하고 고된 광야의 길을 가야하는 백성들에게 미리 쓴 맛을 보게 하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게 하고 또한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한 그분의 계획이셨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출 15:25) 쓴 맛을 본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쓴 물이 있는 곳에서 단 물이 있는 다른 곳으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마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엘림이 있었고 그곳은 종려나무가 있는 오아시스였지만 그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마라에 머물러 있게 하셨고, 똑같은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무를 던져 넣으니 쓴 물이 단 물이 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쓴 우물에 십자가가 세워졌을 때, 단 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한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에서 맞닥뜨리는 쓴 경험이 모두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즉 쓴맛은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벌 받는 것이라는 오해를 만들어 냅니다. 물론 우리가 자초하는 쓴맛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주어지는 쓴맛이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에서 경험한 쓴맛은 그들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쓴 우물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 가시는 이유입니다. 쓴 물이 있어야 달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홍해가 없었다면 건너는 기쁨이 없었을 것이고, 쓴 물이 없었다면 그것을 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생의 쓴 경험은 결코 의미 없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게 하는 인생의 맛은 단 맛이 아니라 쓴 맛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