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보면 궁금하고 보고나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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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확실하게 갈라진 이분법적 진영논리-. 자기편에는 강하게 집착하지만 상대편에게는 극도의 증오심을 발산하여 전면적이고 무차별적 공격을 퍼 붓는 ‘증오의 일상화’가 편갈린 미디아들을 통해 ‘상품화’되어 대중을 파고드는 모습이 마치 ‘집단적인 최면’이라도 걸린 듯한 한국의 모습은 ‘안보면 궁금하고 보고나면 답답함’, 미국 교포들이 가진 공통점일 것입니다.

거리를 좁혀보자고 모여 앉으면 앉을수록, 토론하면 할수록, 알고 싶은 것만 골라 알고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믿기 때문에 상대를 향한 증오는 모이기 전보다 더 깊어갑니다.  미국에서도 백인들끼리 모여앉아 인종편견에 대해 토론을 하게 했더니 편견이 토론 전 보다 더 심해졌다고 하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 각 그룹의 대표들이 상대를 공격하는 화력은 마치 같은 나라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적을 소탕하듯, 소멸되어 사라져야 할 사람들을 대하듯, ‘핵폭탄’ 보다 무서운 무차별적 언어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쏘아대고, 이에 화답하는 군중들의 환호와 갈채로 현장의 영웅이 될 뿐 아니라, 기술혁명의 산물인 SNS를 타고, 옳으냐. 그르냐의 구차스러운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생산과 재생산, 확대재생산을 해갑니다.

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은 불통과 극단주의를 키우는 온상이 되어 자신의 이념과 생각이 맞는 ‘멤버’들 끼리는 쉽게 친구가 되어 원활하게 소통하지만, 생각이 다르면 주저 없이 떠날 뿐 아니라 아예 다시 접근하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어 잠그고 끼리끼리만 소통하면서 상대방에 대한끼리 끼리 ‘집단 증오’ 수위를 높여갑니다.

양극화 현상은 교회 내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앙공동체 구성원인 성도들도 ‘신자와 불신자’ 혹은 ‘구원 받은 자와 구도자가’ 아닌 정치적 이념으로 편을 갈라 ‘사회 흐름의 진보 혹은 보수 중 어느 쪽에 붙어있는가? ‘, 파란색인가, 빨간색이가를 내 편과 네 편의 기준을 삼습니다. 이런 구분은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의 모임에서는 한국의 정치 이야기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금기(?) 수칙으로 되어 있는 것도 슬픈 현실입니다.

바울은 말썽 많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전 11:18-19)고 말한 분쟁이나 편당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과 이방인들 적대관계가 존재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의 몸에 표시한 할례의 유무가 기준이 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갈라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고, 성막과 성전에도  Free Access Zone, Limited Access Zone, 그리고 Prohibited Zone등으로 구분되어있어, 유대인, 이방인, 여자 등이 정해진 Zoning을 넘어 갈 수 없도록 벽으로 막아 화합과 통합의 장소가 아니라 차별과 분리의 장소가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원수들 사이의 담을 십자가로 완전히 헐어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등의 중간에 막혔던 담을 모두 헐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Free Access Zone으로 접근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관계를 말씀하면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라고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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