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역사는 3일간의 고요 속으로…”

1089

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군병들이 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 양손과 발에서 못을 뽑고 겨드랑이를 밧줄에 걸어 내리는 순간까지도 멈 출줄 모르고 줄줄 흐르는 옆구리의 피는 날카로운 창이 몸속으로 얼마나 깊이 찔렸는지를 가늠케 합니다.  가시관을 억지로 눌러 씌운 머리와 이마는 살점까지 패여 두개골까지 들어나 범벅이고,  군병들이 쇠박힌 가죽 회초리로 무지막지하게 번갈아 내리치는 매질에 살점이 떼이고 피가 묻어나 갈아놓은 밭고랑처럼 성한 틈이 없습니다.  여럿에게 둘러싸여 ‘논스톱’으로 걷어차인 다리와 하체는 군화자국과 피멍 투성이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가격당한 얼굴과 목 등도 차마 표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흉측하고 처참하여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빨리 빨리….”  눈물과 땀이 뒤섞여 연신 흘러내리는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며 바쁘게 몸을 움직입니다.  해가 저물기 까지 컷오프(Cutoff)는 두어 시간 남짓. 시체 처리 과정은 먼발치에서 눈 구경도 못해본 무경험자 두 사람이 긴박하게 장례 준비를 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조차 진땀을 뺍니다.  몇 분전에 숨을 거두어 그런지 아직 온기가 느껴졌으나 천으로 닦고 유향과 침향이 섞인 액체를 바르는 과정이 어설프고 서툴 기만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 부자로는 드물게 이름과 출신지에 공회의원이라는 직업과 ‘예수의 제자, 의로운 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는 신앙 이력과 예수를 재판하는 동료들의 ‘결의와 행사에 반대한 자’라는 결연한 행동에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숨기더니’하는 소심한 성격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오늘은 완전히 다른 요셉입니다.

‘하이클래스 리치 타운(High Class Rich Town)’ 아리마대, 출세한 부자들이 모여 사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20마일에 위치한 동내로, 그 동내 사람이면 당연히 근처에 자신과 가족을 위한 묘지를 장만해 두었을 만 한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예루살렘에 공동묘지를 구입해 놓은 이유가 오늘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체면 불구하고 단숨에 총독 관저로 달려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여 빌라도 총독의 승낙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을 제하면 해 떨어지기 까지 고작 두어 시간 남짓, 땀 흘리며 서두르는 이유입니다.

장례준비를 돕는 동료 니고데모.  2-3년 전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처음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을 때, AD 33년 4월 7일, 밤에 찾아와 “네가 거듭나야 갰다”고 하시자 동문서답하고 사라졌던 바로 그 바리세인 지도자입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로는 달인이지만 신앙의 왕 기초 ‘거듭나는 것’ 조차 몰랐던 그는 마치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구원”도 받지 못하고 폼만 잡는 위선자들과 같습니다. 그 후에 한번 예수를 변호한 적이 있고, 오늘이 세 번째지만 그는 이제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해는 점점 저물어 하얀 그림자가 길게 느려갈 무렵, 새 마포로 싼 시체를 자신의 새 무덤에 옮겨 놓고 굴문을 나서며 두 사람은 허리를 펴고 땀을 닦습니다. “아,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 – 화양연화 (花樣年華)라고 했던가!”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이사야 53:9), 700년 전 이사야가 예언했던 바로 그 메시아의 시체를 묻고 집으로 돌아가자 통행금지를 알리는 어둠이 소리 없이 깔리고 아무 일 없는 듯 시치미 떼는 역사는 3일 간의 고요 속으로 묻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