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염려에서 벗어나야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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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우리는 우리의 인생사를 말 할 때, 흔히 고생과 염려, 그리고 수고뿐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인생이란 자체가 항상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행복한 날보다는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와 같다고 했고, 성경은 –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5:7)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성경은 이와 같은 인생의 모습에 정 반대되는 의미인 ‘염려를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 아니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염려를 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 앞에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며, 이를 곧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 사람들처럼 보물이나 재화를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마6:19). 참으로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보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마6:2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목숨을 주시고 몸을 주셨는데 음식이나 의복은 어찌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니 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위하여 –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의 백합화를 보아라(마6:29).고 하십니다.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 솔로몬 왕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6:29).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 너희가 염려 한다고 그 키를 한 자도 더할 수 없다(마6:27).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키’라는 단어는 우리의 신체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설명을 이어간 후에, 이러한 이유를 들어서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6:31)고 재차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염려에 갇히지 말고 염려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과 몸을 주셨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방인들과 달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걱정하지 않더라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일을 위하여 미리 염려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 인생은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내 마음대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한 것이다. 내일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마6:34)”.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너희는 이방인처럼 염려하지 말라”고 했으니, “다가올 미래를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그냥 살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오히려 우리에게 있어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을 마치 마지막 날처럼 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책임을 감당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오늘의 일’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나라’라는 말은 바로 천국을 의미하겠지만, 좀 더 나아가면 우리가 천국의 시민으로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의 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은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하나님의 의만을 사모하면서 만족하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데 최우선을 두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약속을 주셨기에 염려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 너의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