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수님의 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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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신학자 니콜라스 베르자예프는 시간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번째는 자연적 시간입니다. 이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밤낮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시간으로 인간의 행위와 의지와는 관계없이 흘러갑니다. 두번째는 역사적 시간입니다. 이것은 자연적 시간 속에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지나 온 시간 속에서 인간은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통하여 역사적 시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실존적 시간이라고 구분했습니다. 이는 영원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유한한 한 인간이 실존적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입니다.

삶이 얼마나 의미 있었는가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오래 살아야 의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을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의 물리적인 자연시간은 매우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간은 역사적 시간이었고 또한 33년의 짧은 삶을 영생이라고 영원한 시간의 실존적 삶으로 이끌어 내신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매일의 일상은 매 순간 순간이 의미 있고 바쁜 삶으로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는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고, 사람들을 찾아 심방 하셨으며 거의 매일 밤 늦게까지 자신에게 몰려드는 환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예수님께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쉼 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초청합니다. 이유인즉 그의 딸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지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막 5:24)라고 기록합니다. 그 날도 정말 분주하셨습니다. 그의 딸이 죽어가고 있었고 한 시가 급했습니다. 회당장은 물론 제자들도 마음이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어서 가셔서 그의 딸을 고쳐 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가시던 길을 멈추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멈추셨습니까? 지금 그 바쁜 와중에 죽어가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달려가도 모자를 판에 예수님께서 가시던 길을 잠깐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보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왜냐하면 그곳에 불쌍한 한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3초의 비밀이라는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잠시 닫기 단추를 누르지 말고 기다려 보자. 누군가 아픈 아이 때문에 달려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발신호가 떨어졌을 때 앞차가 서 있어도 빵빵거리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자. 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는지 모른다.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지켜보자. 그가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보이지 않더라도 친구의 어깨 위에 안녕의 손으로 다독여주는 마음이 언젠가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 아내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 짓고 들어주자. 피곤하고 배고픈 저녁 넉넉한 웃음으로 맛있는 저녁 밥상을 내올 사람은 아내 밖에 없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 3초만. “살아있음에 오늘도 행복하리라.”

예수님께서 그 바쁜 걸음을 잠깐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던 그 짧은 시간의 멈춤, 아무도 그 멈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에게 있어서 그 짧은 시간은 한 영혼을 위한 큰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3초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속에는 연약하고 부끄러워 두려움과 걱정 가운데 있는 한 여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배려와 사랑이 담겨진 시간이었습니다. 그 짧은 3초의 시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위대한 메시야께서 평생을 질병과 죄의 짐에 눌린 한 영혼의 마음을 살피기 위한 역사적 시간이었습니다. 그 짧은 3초의 시간은 죄악 세상에서 두려움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던 한 여인에게 영생의 삶을 선물하기 위한 실존적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3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