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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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베드로는 주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주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70 번에 7번까지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용서의 가르침을 담은 비유를 주십니다. 주인에게서 만 달란트(성인 20만명의 일년 임금 총액)의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성인 한 사람의 4개월 임금)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아서 결국 주인에게 도로 잡혀가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비유의 교훈도 정리해 주셨습니다. “너희들이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용서가 어려운 우리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비유를 깊이 묵상하면, 그 속에서 용서의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주님께선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보여주십니다. 비유 속 주인은 만 달란트의 빚 때문에 힘들어 하는 종을 불쌍히 여겨 그 빚을 몽땅 탕감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죄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모습을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사실을 비유합니다. 죄가 어떤 결과들을 낳았길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보신 걸까요? 창세기 3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만 아담과 하와가 보여준 행동들을 통해 죄가 낳은 참혹한 결과들을 뚜렷이 보여줍니다. 먼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숨었습니다. 또한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인 하와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다고 우깁니다. 하나님께선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추방하셨고, 그들에게 사망이라는 벌을 주셨습니다. 죄가 낳은 첫번째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결과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이상이 생긴 겁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는 상대방이 보지 못하도록 자기 몸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자기가 죄를 지은 건 하와 때문이라고 비방하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죄 때문에 사람들 간의 관계도 깨지고 만 겁니다. 결국 죄로 인해 망가진 관계들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끔찍한 환경을 낳았고, 인간은 그 속에서 눈이 먼 채로 진리를 찾아 헤매고, 남 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보려고 서로 다투고, 죽음 앞에서 절망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불쌍한 마음은 이들 고통을 향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모든 불행과 고통의 근원인 죄를 용서해주신 겁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사람들 간의 관계가 다시 화목하게 된 겁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 회복된 관계를 누리고 유지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도구가 회개와 용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치유하고 유지하는 데, 용서는 성도들의 관계를 치유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 용서하라는 겁니다.

진정한 용서를 위해 가슴으로 느껴야 할 일도 있습니다.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주인에게 큰 은혜를 입고도 변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자기를 용서하기 위해 임금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를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빚 탕감을 통해 겪어야 할 주인의 부담과 아픔에 무심한 종은 상상을 초월하는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몰랐던 겁니다. 이 무심한 종을 반면 교사로 삼아,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대가를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 대가는 바로 독생자 예수의 생명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깊은 묵상을 통해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과 아버지 하나님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불하셔야만 했던 대가의 크기를 실감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무한한 은혜를 가슴으로 깨닫고 눈물로 감사하며 벅찬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그 무한한 대가를 치르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주신 관계 회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결국 용서를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하나님의 것에 비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닫고, 마침내 용서를 실천하게 되는 겁니다.

용서는 교회를 에덴으로 세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