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는 은혜로 들어가는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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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입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빛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란,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 많은 인생들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조건 없는 호의나 혜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이 우리들 가운데 나타난 모습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가장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단어 중의 하나가 ‘은혜’라는 말일 것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도 은혜라는 말이 들어간 대목에서는 우리가 눈시울을 붉힐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찬송과,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응답하신 기도 감사/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심 감사/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이러한 찬송을 부르면서 많이 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 저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성경 누가복음 17장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 은혜 받은 사람은 많아도,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 나와서 그분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은 나병환자가 열 사람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열 사람이 똑같이 병 고침을 받았는데도,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시에 유대인 사회에서 멸시받던 사마리아 출신의 나병환자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타까워하시면서 은혜를 망각한 사람,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그들은 대체 어디에 갔느냐고 오늘도 묻고 계십니다. 은혜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근거한 것이라면 감사는 우리들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하나님께 창조된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우리는 똑같이 예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기뻐하며 감사하고, 어떤 이는 여전히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돌아와 감사하고, 어떤 이는 망각하고 떠나갑니다(눅17:14-19).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깨닫고 그 사랑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본문 13절에 보면, 나병환자 열 명이 모두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주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15절에 의하면, 그 중의 한 사람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답답할 때 기도했던 간절한 마음의 크기와 해결 받았을 때 감사하는 감격한 마음의 크기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성경은 –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잠23:27)고 말씀합니다.

영어단어 중에 ‘감사하다(thank)’라는 말은’생각하다(think)’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복된 인생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사는 오늘 하루의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간 날들 동안에 내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노라면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보고 감사하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