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의 딜레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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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박사(횃불재단 트리니티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 담당)

하나님은 의롭고, 정의롭다. 그래서 죄를 참을 수도 없고 간과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처벌 해야 한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분명이 말한다. 인간의 눈에 보기에 작은 죄처럼 보이더라도, 이는 사람의 생각이지, 하나님 앞에는 큰 죄가 되어 사망만이 죄의 값이다.

여기에서 사망은 단지 육체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이별해서 지옥 형벌을 받는 영적 죽음까지도 포함한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영원한 사망, 지옥 형벌을 주어야 의가 성립된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작건, 크건 모두가 다 죄인이다. 죄의 뿌리는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갖고 계신 또 하나의 성품이다. 그렇기에 죄인에게 형벌을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죄인에게 형벌을 안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롭고 정의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딜레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벌을 줄 수도 없고 안 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죄인에게 벌을 준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훼손되고, 죄인을 그냥 용서한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훼손된다. 하나님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나님은 자기에게 죄의 형벌을 내리기로 하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4-5).  하나님은 자신에게 형벌을 내림으로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한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육신을 입는다. 성육신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어서 이 땅에 살고, 시험을 이기고, 병자를 고치고, 제자를 키우고, 말씀을 선포하고, 귀신을 쫓아낸다. 드디어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리니 하늘과 땅을 잊는 제물이 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형벌을 받았다. 그래서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한다. 하나님 스스로 벌을 받음으로 공의를 만족한다. 죄인을 용서함으로 사랑을 만족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다. 하나님의 의는 공의와 사랑을 모두 포함한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만족한다. 마태복음 3:15에 나타난 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그래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는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이유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함이다.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야 한다. 물론 세례 자체가 의를 이루지는 않는다. 세례는 일종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회개할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있는 것처럼 되었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졌기 때문이다. 세례는 인간을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을 상징한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