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상속에 찾아온 Epiph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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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택사스에 위치한 포트 후드에서 군목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부활절 아침예배를 준비하기위해 채플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검은 정장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교회 건물 주변에 서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막 예배가 시작될 무렵 의외의 방문자가 등장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다름아닌 부시 대통령였습니다. 50명 안팎의 군인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서, 그는 일일히 교우들과 따뜻한 악수를 나누며 인사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그날 파병을 앞둔 많은 군인들의 가족들은 예배에 참석하여 자신들의 옆줄에 함께 앉아 예배드리던 소탈한 대통령을 만난 것만으로도 큰 격려를 받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줄에 서계신 장면을 소개주고 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위해 요단강가에 가득히 늘어선 행렬가운데 예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긴 행렬을 기다려 자신앞에 세례받기 위해 서계신 예수를 바라보며 그 때 요한은 이렇게 놀라며 말씀합니다: “아니 오히려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아닙니까?” 그러나 극구 말리는 요한을 설득하여 예수님은 회개의 세례를 받기위해 줄서있었던 사람들과 같이 죄인의 모습이 되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 때 이 세례의 현장에 신비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위에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부터 큰 소리가 이렇게 들렸던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3:16-17) 바로 주현절 절기엔 교회마다 “예수님의 세례”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말씀의 뜻을 되새깁니다.

성탄절(Christmas)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인성”(Humanity)을 강조하는 절기라면, 주현절(Epiphany)에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는 곧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그의 “신성”(Divinity)을 주목하는 절기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세례받는 현장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주현절(Epiphany)이란 “나타남” “드러냄”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나타내심” (Manifestation of God)을 축하하는 절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한 본문으로 자주 인용되는 구약의 이사야 42장에선 이땅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예수님의 사역은 거칠게 외쳐대던 당시의 권세가들, 그리고 진실을 가장하여 목소리를 높이던 거짓 선지자들, 또한 예나 지금이나 거리에서 빈 공약만을 외치는 정치가들의 빤한 속임수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것이 었습니다. 주님은 상하여 힘없이 부러지는 연약한 갈대에게 조차 관심을 갖듯, 세상에서 찢기고 상처난 이들의 영혼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는 불꽃을 피우지 못하고 연기만 뿜어내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죽음같이 차가와진 수많은 영혼들 안에 다시금 불꽃을 피워주셨습니다. 마치 우리와 함께 긴 줄속에 서서 기다리며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듯이 말입니다. 신약 성경학자 F.F. Bruce는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는 것을 가르켜, “예수님의 세례는 아마도 어떤이들에게는 오해를 가지게 하였다. 그것은 세상의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다닌다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같이 오해받음을 오히려 기쁨으로 여겼다.” (He was content to be misunderstood) 그는 기꺼이 우리를 위해 자신이 오해받으심을 오히려 기쁨으로 여긴 것입니다.

가끔 함께 고생하며 미국생활을 시작했던 친구들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며 몇 푼이라도 건네주는 손님의 팁을 받았다고 함께 즐거워하던 친구도 있습니다. 자정을 넘긴 심야에 공장의 바닥을 빗자루로 청소하며 같이 라면을 끌여 먹었던 이들도 있고, 허리까지 내린 눈을 삽으로 치우면서 추운 시카고 겨울의 한복판을 신문을 던지며 지냈던 추억도 생각이 납니다. 세월을 지나며 주위에 있었던 모든 이들은 마치 첫 운전면허를 따기위해 면허장의 긴 줄에 함께 서있었던 사람들과 같은 이들입니다. 우리의 삶이 꺽여지는 갈대처럼, 꺼져가는 등불처럼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은 친구처럼 다정히 우리가 서있는 행렬에 함께 같이해 주셨습니다. 간혹 친구들의 격려속에서, 혹은 이웃들의 사랑가운데, 또는 생각지도 못한 이방인의 친절속에서,… 문뜩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경험합니다. 곧, 일상에속에 찾아온  epiphany의 경험을 새롭게 체험하게 됩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