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어나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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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아주 오랜 시간, 무려 38년 동안 ‘희망 고문’에 시달려 온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북쪽으로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는 자신의 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곳의 병자들은 물이 동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잔잔하던 못이 갑자기 출렁거리는 순간을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젓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학자 대부분은 지하수가 간헐적으로 솟구칠 때 일어난 현상이었을 거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병자들은 물이 동하는 순간만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천사가 물을 휘젓는 그 순간 제일 먼저 못에 뛰어드는 사람은 병에서 치유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의 믿음은 당시 이방 종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치료의 신이라고 불리운 아스클레피우스를 섬기는 신전 안에는 치유의 샘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샘에 들어가 몸을 씻으면 무슨 병이든 치유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데스다 못 주변에 모인 병자들은, 못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자연 현상에다가 이방 종교 식 의미를 부여해서 스스로를 희망 고문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성전 곁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지 않고, 헛된 대상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있었던 겁니다. 육체의 질병이 깊어지면서 마음의 병도 함께 깊어지고 만 겁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을 보고 참 마음이 아프셨을 겁니다. 먼저 죄가 낳은 절망적인 상황 때문이었을 겁니다. 베데스다 연못 주변을 꽉 채우고 있는 병자들,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창조한 세상은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가득했던 공간을 완전한 내 눈에 보기에도 심히 좋을 정도로 완벽하게 창조했는데…죄가 사망을 끌고 들어와 이런 처참한 결과를 낳았구나.” 하시며 마음 아파하셨을 겁니다.

또한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는 백성들이 불쌍해서 마음 아프셨을 겁니다. 육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절망의 근원이 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걸 모르는 백성들이 불쌍하신 겁니다. 죄 때문에 영의 눈이 가리워져서,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하나님은 찾지 않고, 당장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거짓 소문만 듣고,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안타까우신 겁니다. 주님께선 베데스다 못 주변에 모여든 병자들을 통해 죄로 망가진 인간의 현주소를 보고 계신 겁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엔, 우리들도 베데스다 못에 몰려 있는 병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선 병자들 중 가장 오랫동안 절망 속에 살아왔고, 앞으로도 소망이 없는 병자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앉아있지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는 걸로 보아 중풍 병자였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몸이 그런 지경이니 못의 물이 동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본인의 말을 들어보니 자기를 도와줄 사람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38년이라는 시간이 키워온 절망의 크기와 무게는 태산과도 같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꾸준히 그곳에 나와 있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주님께선 그런 병자에게 다가가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38년이나 누워있던 병자는 신세 한탄만 늘어놓습니다. “보시다시피 내 몸은 이 모양이고, 게다가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물이 동해도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것만 지켜봐야 합니다.” 자기에게 낫길 원하느냐고 묻고 계신 분이 예수님 이시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을 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한 마디 말씀으로 그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희망 고문을 주는 분이 아니라, 소망 그 자체이심을 확실히 보여주신 겁니다.

주님께선 이 표적을 통해 온 세상에 아주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먼저 절망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예수님 뿐이라는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의 근원은 죄인데,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인류의 모든 죄를 단번에 그리고 완전하게 씻어 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없는 겁니다. 이 분명한 진리, 여러분과 제가 믿고 있는 이 진리를, 오늘 본문 속 주님처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전하는 자들이 다 되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또한 구원은 100%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겁니다. 38년된 병자는 주님께 믿음으로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모든 병자들 가운데 그에게 다가가셨고, 믿음도 없는 그를 치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신 겁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망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평생 감사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이 되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