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유를 향한 부르심

1001

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하이웨이길 육교위에서 어느 분이 “Thank you, Dr. King”이라는 플래카드(Placard)를 붙여놓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Martin Luther King Jr. Day를 기념하며 자유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준 킹목사에 대한 감사의 맘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터 킹목사님의 어록가운데 이같은 글이 있습니다: “맘속에 여전히 노예가 되어진 사람에겐, 자유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맘속의 자유 곧, 분명한 자존감을 가질 때만이 칡흑같이 어두운 노예의 삶을 대적할 강력한 무기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이미 약160년전, 링컨 대통령에 의해 선포된 노예해방의 선언으로 미국은 더이상 노예제도없는 자유인의 땅으로 변화되었지만, 단순히 제도의 선포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인의 삶” 살도록 자동적으로 만들어 주진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마틴 루터 킹목사님의 인권운동이나 “흑인들의 생명가치 운동”(Black Lives Matter) 등을 볼 때에,  자유란 역사의 어느 한 순간에 그냥 주워진 사건이기보다는, 부단히 힘써 싸우며 더 큰 자유의 진보를 이뤄가야할 “여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자유인”으로 서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포한 자유의 삶은 우리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통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같이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5:1)

애굽에서 430년간을 종살이하던 히브리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의 사건을 출애굽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출애굽기의 역사는 다름아닌 “노예로부터 자유로의 여정”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의 여정이 직선거리로는 고작450여 킬로미터의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백성들은 40년간을 광야길에서 그 오랜 세워를 보내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노예근성에 찌들은 히브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하나님의 자녀요 자유인의 삶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광야의 학교였던 것입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벗어나 자유인의 삶을 살도록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자유를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그들은 손과 발에 사슬에 묶인 노예는 아니었지만, 그들 맘속에 뼈속깊이 물든 종의 근성은 쉽게 지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의 고난을 만날 때 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14:11&12)  바로 노예근성이란 자신의 책임보단 남의 탓만 찾는 자세입니다. 그들의 삶의 태도는 원망과 불평뿐입니다. 정작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섬기기 보단 헛된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요행만을 찾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비겁함과 비굴함이 몸에 배인 것이 노예근성입니다. 그러나 자유를 향해 떠난 성도의 여정 이것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생명과 역사의 주인임을 믿고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먹을 양식도 마실 물도 없는 광야길에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더 소중한 것임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자유인으로 부름받은 성도의 삶이란 창조주되신 하나님외에는 그 어느것도 숭배할 가치가 없는 것을 알기에 언제나 그의 삶은 당당하며, 믿음으로 담대히 인생의 길을 걷는 이들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노예로 삼아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뻬앗으려하는 세상의 시험과 유혹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같은 도전속에서 애굽을 떠난 히브리 백성같이 광야길에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우매함과 어리석움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같이 어리석은 “종의 멍에”를 다시 걸머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자유를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속에 이기심보다는 희생하고자하는  자유를 주셨고, 미워하기 보단  사랑할 자유를 주셨으며, 섬김을 받기보단 봉사할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그렇습니다 자유인의 최고의 삶의 모습은 기꺼이 자신을  “사랑의 종”으로 드리는 역설적인 진리라는 사실입니다.(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