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벽이 무너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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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언어와 생활 습관 등 서로 다른 점이 많았지만 그 중의 하나가 집에 담이 없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살던 집도 높은 담에 든든한 대문, 담 위에는 철망과 깨어진 유리 조각이 있었는데 여기는 담이 없어 시원하고 자유로우며 서로 신뢰하고 열려 있는 사회임을 느끼게 하였다.

지난 11월 9일은 독일을 동서로 갈라 놓았던 베르린 장벽이 무너진지 30년이 된 날이다. 동쪽이 공산주의에 점령되자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담벼락이었다. 편지는 주고 받았지만 사람은 내왕할 수가 없었다. 일가친척 친구들이 갈리우고 사업 직장 생활 모든 것에 제한을 가지며 29년 한 세대가 지나가다. 그것이 삶이라고 받아드릴 수도 있겠지만 자유를 원하는 물결은 막을 길이 없어 그 장벽은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그들의 환호와 기뻐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보이는 장벽이 없어졌다. 정말 자유로운가! 보이지 않은 장벽은 여전히 있음을 본다. 우리에게 담은 있었지만 이웃과의 관계는 잘 열린다. 마음이 통하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털어낸다. 동시에 현실은 관계에 높은 담이 많다. 지역, 신분, 직업 등이 서로를 나눈다. 남북만 아니라 동서, 도시와 시골, 가진 자 못가진 자 간의 장벽은 높이 올라가 있다. 어디에나 있는 일이다. 담이 없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소수민인 우리가 다수민에게 소외 당하고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일상이다. 외모,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이 다르기에 겪는 일이다. 미국 자체에도 같은 현상이다. 링컨의 노예해방 후에도 100년 이상 흑인은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으로 또 다른 담을 무너뜨리긴 했지만 사회 각 부면에서 여전히 장벽이 많다. 같은 백인이라도 종족 지역에 따른 구분이 크다.

베르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사람들 관계에 있는 거리를 좁히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자세나 생활 습관이 달라 서로가 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고 융화가 쉽지 않은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에티오피아는 왕정에서 공산주의를 거쳐 민주주의로 발전하였다. 한국 전쟁에 파병할 정도로 부유하던 나라가 세계에서 바닥이 되었다. 공산주의 산물로 주민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받기를 좋아하며 받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다. 생각과 삶의 자세가 서로 다르면 관계와 사회의 장벽은 생기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장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하던 사람이 그를 두려워하고 멀리하고자 한다. 하나님을 거스린 죄의 형벌이 죽음인 것을 알기에 피하여 숲속에 숨는다. 하나님은 불칼로 담을 쌓고 분리하여 사람을 보호하였다. 죄는 형벌을 받아야 사면되고 형벌은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사랑하여 결국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인간 죄의 형벌을 대신 받아 죽음으로 죄를 사면하고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 평화의 길을 열고 부활하심으로 완성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무너뜨리고 소통과 생명의 길을 열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여 생명을 누리고 이웃과도 평화하게 된다. 이 큰 장벽이 무너진 것이 어찌 감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