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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문성과 인성

상록회 최순봉회장

최순봉 한미상록회장(시카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취향과 능력이 서로다르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조화되어 풍겨지는 인성이란 사람 냄새와 함께 탄성으로 울려 퍼지는 화음이 나게 마련이다. 그 냄새는 향기일 수도 악취일수도 있고 그 화음은 심금을 울리는 평화의 노래가 되기도 하고 전쟁터의 포성을 점화하는 내관을 격발시키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이런 어원의 상대적 개념에 집착하게 된 지난 수일동안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보게 된 이유에서다. 그리고 전문성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꼭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는데 갖춰야할 기본 요소일 수 있다. 그리고 인성은 사람이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갖춰지는 최소한의 품성이라 말하고 싶다. 또한 이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피치 못할 환경이 설정되면 인성을 지켜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인성을 포기하면 동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전문성에 의한 인성이 질식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실 예로 미국이란 다민족사회에서 펼쳐지는 생존경쟁은 인존차별이란 집단이기를 돌출시키면서 우리 동포사회를 배경으로 이익을 창출하려는 은행이란 돈 장사를 하고 있는 무리들을 돌아 볼 수 있다. 이런 와중에서 순수한 우리 동포은행을 뒤로하고 동포사회의 자본을 가장 많이 흡수하고 있는 지방은행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은행에서는 얼굴마담 부행장이란 직함으로 한국 사람이 앉아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은행은 고객에게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철칙에는 변함이 없다. 담보 없이 융자를 해 주지도 않고 융자해준 금전에 손실을 입기 전에 담보물을 반드시 몰수한다. 이런 과정에서 거래자에게 매몰찬 전문인이 은행에는 찬란하게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런 이 그 자리에 고용 된 가장 큰 힘은 동포사회란 시너지다. 하지만 그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시너지를 준 동포사회는 언제나 시장경제의 가치로만 따진다. 나는 몇 일전 상록회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모 은행의 중견 이상의 행원을 찾아가 들은 소리가, 은행은 장사하는 곳이지 사회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광고 스폰서는 할 수 있어도 어려움을 돕는 창구는 전혀 열려 있지 않다는 직설적인 말을 듣고 ‘재량껏 해 보십시오’하고 가지고 간 인쇄물은 전해 주었더니, ‘이러시면 안 되지요 제 개인 호주머니 돈 달라는 말입니까’ 라고 반문하는 말을 듣고 이 사람이 인성 없는 전문인이구나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동포사회의 시너지를 업고 특채된 것이나 다름없는 직장생활을 하므로 안정적인 경재생활을 누리면서 유일한 동포사회의 노인단체가 불의에 의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럴 때도 개인의 호주머니에서는 십시일반 필요에 동참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셈이 되고 보니 정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결 된 저력을 발휘해야하는 숙명은 피할 수가 없다. 그들이 동포사회를 향한 사명감을 회복하게하기 위해서도 단결 된 저력이 필요하고 인성을 저버린 사람이 동포사회의 시너지를 누릴 수 없게 하여 동포사회의 건전성을 보호하는데도 단결 된 저력이 필요하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서당엘 다니면서 양반정신을 교육으로 훈련 받은 적이 있는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과정이 양반은 대추 한 알을 먹어도 끼니를 대신하고 밥상을 받아 식사를 하는 도중 실수로라도 수저를 떨어뜨리게 되면 수저를 다시 줍거나 바꾸어 식사를 연장하지 못하게 하는 훈련이었다. 이는 양반이란 자존과 자부심을 배양하여 삶이 비굴해보이지 않게 하려함이었다. 허나 배고픔을 참고 위장하는 버릇이 옳지 않음을 요즈음에 와서야 깨달아간다. 심적인 아픔이나 배고픔 같은 고통을 숨기고 인내하는 동안 대개의 사람들에게서 쉽게 인성이 파괴되는 것을 보아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슴을 열고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데 이는 전문성으로는 그러한 친구를 얻기가 전혀 불가능하다. 가슴을 연 나눔이란 인성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에게 베푸는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참맛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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