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건달린 반 믿음(Conditional half faith)에서 온 믿음(whole faith)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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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한편으로는 믿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의심을 갖는 것을 일컬어 반신반의(半信半疑) 라고 하고 비슷한 말로 차신차의(且信且疑) 라고도 합니다. 숫자적인 개념 50:50의 반반비율을 뜻하지 않고 의심이나 불신이 혼합되어있다는 뜻으로 영어에도 ‘Half trust’ 혹은 ‘Half faith’등과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에는 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열병으로 거의 죽어가는 외아들을 고쳐 달라고 예수께로 뛰어온 왕의 신하는 반 믿음 (Half faith)이 무엇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를 두 번째 방문하셨을 때 베드로의 고향이며, 20마일 거리의 가버나움 사는 이름이나 나이, 인종과 가족관계, 신앙에 대한 소개가 전혀 없는 ‘왕의 신하’ 한사람이 예수님의 방문 소식을 듣고 외아들의 열병을 고쳐 달라고 뛰어왔습니다.

‘왕의 신하‘라는 함축성있는 표현으로 보아 그가 권력, 명성, 부, 그리고 왕과 국사를 논의하는 성공한 삶을 삶았음을 암시하며 따라서 고열로 거의 죽게 된 외아들을 위해서 유명하다는 모든 의사들이 진료가 있었고,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였으나 효과가 없었을 것입니다.  백약이 무효하고 남은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오는 것만이 외아들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선택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혹독한 뙤약볕을 달리는 아버지-.  혹시 오고 가는 동안 아들이 죽는다면, 사랑하는 외아들의 임종을 못 보는 평생 후회 할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선택, 집안에 믿을 만한 종이나 친척 중 하나를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서는 믿음의 선택입니다.

도착해서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는 “죽기 전에 내려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부탁합니다.  아들을 고쳐 주실 것은 믿는데, 죽기 전에 아들에게로 오셔서 고쳐달라는 조건이 달려있는 반 믿음(Conditional half faith)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아들이 죽었더라도 살릴 수 있고, 거리와 상관없이 아들이 낫는다는 온 믿음(whole faith)이 아닙니다!

촌각을 다투며 화급한 신하에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책망만 하시고 떠날 기색이 없자 신하는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가서 고쳐 주소서” 다시 간청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선언하셨습니다.  귀를 의심해 봅니다. “네 아들이 살았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말씀이 떨어지자 신하는 ‘정말입니까?’ 혹은 ‘만일 안 살았으면 어쩌실 겁니까?’ 등으로 따져 묻거나 확인하려 하지 않고 “믿고 가더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셨으니 신하는 하루를 묵고 그 다음 날에야 기쁨으로 돌아갑니다.  가는 도중 나온 종들을 만나 아들의 병이 나은 시간이 예수께서 “네 아들이 나았다” 선언하신 어제 그 시간인 것이 확인 되자, 온 집안이 다 믿었다고 요한은 두 번째 이적의 끝을 맺고 있습니다.

조건 달린 반 믿음(Conditional half faith)에서 온전한 믿음(whole faith)으로 자라가는 신하의 확신, 이렇게 믿음은 확신(Conviction)이며, 대상(Object)이 분명해야 하고, 점점 자라(Growing)가는 것입니다. 아들을 살린다는 믿음으로 20마일을 달려온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았다.” 선언하신 예수께서는 오늘도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조건 걸린 반 믿음이 아닌 온전한 믿음을 가지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