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님이 아시기에 절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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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신약성경 요한복음 5장에는 주님이 양문 곁에 있던 베데스다라는 연못에서 38년 된 환자를 낫게하신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곳엔 환자가 많았습니다.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따금씩 천사가 그곳에 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데,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거기에 찿아 오셔서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8)고 하시자 병이 나았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많은 병자를 뚫고 그를 찾아가십니다. 그 병자가 거기에 모인 환자들의 대표라서 그를 찾으신 것일까요? 그가 제일 딱한 처지여서 그를 주님이 찾아가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가 38년이나 된 병자이지만 여전히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있음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과의 경쟁력이 제로 수준이었으나 절대 생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5:7).

이 사람은 아무도 그를 도와줄 사람은 없는데 다른 사람들과 입수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경쟁력이 제로인 상태인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어이 주님을 그 현장까지 호출한 겁니다. 그리고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요 기도입니다.

마태복음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을 따르며 비명같이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내 딸을 돌아보옵소서!(다15:22). 주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은 시끄럽다고 그녀를 책망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더욱 소리를 높였습니다. 드디어 주님이 발걸음을 멈춰 그녀를 부르셔서 기껏 하신다는 말씀이 – “자녀의 떡을 취해 개에게 던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십니다. 너 같은 이방인에게 줄 떡은 없다고하십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이 견딜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고 울며 체념하고 돌아갔습니까? 아닙니다. 그 여인은 “옳습니다 저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지 않습니까?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이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 그 시로 딸이 나았습니다. 주님의 모욕을 듣고 가나안 여인이 체념하고 돌아갔다면 딸이 나을 일은 없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얍복나루터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을 잡고 씨름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치십니다. 고관절이 어긋남에도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저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절대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그때 하나님이 내가 졌다고 하십니다. 이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네가 이겼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요. 하나님이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세상에 이런 일을 하라하시다니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아브라함의 태도입니다. 아무런 저항이 없습니다. 자기 심장보다 더 소중한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정말 하나님께 잡아 바치겠다고 칼을 목에 댑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내 아들을 살려주실 것이다는 희망을 가지고 자기 아들을 잡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죽어도 능히 산다고 아들을 제물로 드리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급해지셨습니다. –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진정해라 내가 양을 준비했노라(창22:12-14)하셨습니다. ‘여호와이레(예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오고오는 세대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과 사정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38년 된 환자를 생각하면서 체념하지 맙시다. 야곱처럼 물러서지 말고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셔서 모든 위기와 시험이 복으로 바뀌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