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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보 기도와 부흥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짐은 무디와 함께 교회 주일 학교를 섬기던 교사였습니다. 짐은 아이들을 참사랑으로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짐의 순수한 헌신으로 그의 반 아이들은 영적으로 잘 성장했고 모두가 한 식구처럼 화평하게 지냈습니다. 무디는 그런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그런 짐이 폐결핵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당시는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훨씬 전이라 폐결핵은 치명적인 질병이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당장 휴양지로 가서 요양을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초기이긴 하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위험해지고, 병세가 심해지면 주변 사람들에게 옮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떠나기 싫었지만 전염성이 강하다는 의사의 말에 마음을 접어야 했습니다. 떠나기 며칠 전 짐은 무디를 찾아갑니다. “마지막으로 주일학교 아이들을 찾아가 만나고 싶은데 좀 도와줄 수 있겠나? 기도하는데 무디 자네가 자꾸 떠올라서 이렇게 부탁하게 되었네.”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짐의 반 아이들은 다 빈민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 집 한 집 방문할 때마다 짐은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간절한 기도에서 무디는 아이들을 향한 진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짐의 기도가 끝나면 아이들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선생님이 빨리 치유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할께요.” 그때 무디는 짐의 반 아이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짐과 아이들은 서로를 위한 진실된 기도를 통해 하나로 묶여 있었던 겁니다. 반면 무디와 자기 반 아이들을 연결하고 있는 건 무디가 구두를 판매하면서 배운 스킬과 재미에 불과했던 겁니다. 무디는 부끄러웠습니다.

병 때문에 짐은 곧 탈진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짐이 말했습니다. “무디, 자네가 날 대신해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면 좋겠네.” 무디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반 아이들을 위해 짐처럼 진실하게 기도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 집으로 마차를 모는 동안 무디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짐의 저 순수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을 제게도 주세요.”

기도하기 위해 첫번째 아이를 안았을 때, 무디의 영혼은 그 아이를 향한 긍휼함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무디는 그 아이의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심방을 다 마칠 때까지 무디는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디의 기도를 들어주신 겁니다.

무디는 이날의 영적 체험을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중보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준 결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무디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와 단체에 속한 멤버들을 위해 믿음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부흥 강사가 된 후에는 집회 전 그 집회를 통해 만나게 될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무디의 중보 기도는 그 시대 영적 부흥을 낳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중보 기도의 그물 안에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속한 성도들이 속 깊은 기도 제목을 스스럼 없이 나눌 수 있고, 받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서로를 위해 전심으로 중보 기도할 수 있는 가족 공동체로 성장해가야 합니다. 그럴 때 기도에 응답하셔서 치유와 회복과 부흥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강한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중보 기도를 통해 시카고에 부흥의 불길이 재점화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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