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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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시카고기쁨의교회 목사

 

한국에서 목회할 때, 한 권사님이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루는데 다른 한 권사님이 가족처럼 장례를 참석하시고 누구보다도 슬프게 눈물을 흘리셨다. 장례를 다 마치고 조용히 물었다. “왜 그렇게 우셨어요?” 권사님은 “저의 유일한 친구였어요. 목사님! 이제 이 땅에 저는 친구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유일한 친구를 잃었다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릴만한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쉽지 않다. SNS에서는 “좋아요”와 가벼운 인사와 아이콘들이 남발되면서, 인간관계의 정의도 새로운 시대만큼이 바뀌어야 할 실정이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대화 한 번 나눠 보지 않고, 우리 자녀들은 그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하지만 친구는 한자어 표현대로 ‘오랜 동안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진 몇 장을 보고 스마트폰의 글자 몇 마디를 나눠 보고 ‘친구 신청’을 하며 “내가 아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존재의 가벼움’은 도저히 인정하기 어렵다.

당나라 이태백은 “불행과 고난이 찾아올 때 비로소 누가 친구인지 안다”고 말했다. 진짜 친구는 잘 나가고 힘 있을 때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때에는 어떤 누구도 그 사람의 부와 힘을 빨아 먹고자 다 ‘친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불행과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는 같이 있고자 하지 않는다. 따라서 바로 그때 함께 하는 자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이다.

특별히 시편 성경에서는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시 71:9)라고 증거한다. 곧 시편 기자는 하나님에게 늙을 때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힘이 없을 때 나를 떠나지 말아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늙으면 사람은 떠난다. 힘이 없으면 사람을 사라지고 병들고 아프면 더욱 사람들은 우리를 멀리한다. 그러나 그때에 함께하는 사람이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다. 하지만 이 땅에 친구는 언젠가는 분명히 떠날 것이다. 그리고 앞의 권사님처럼 친구 하나 없이 혼자 남은 인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친구를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친구가 될 것이다. 내가 늙고 병들고 아프며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누구보다 가까이 있을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우리의 친구로 삼는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친구는 유한하며 한계가 있다. 또한 요즘 시대에 친구는 점점 가볍고 형식적인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불행과 고난이 찾아올 때” 나의 친구가 되어줄 존재를 만나야 한다. 얇고 가벼운 관계로 분심과 피로함만 생기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깊이와 영성을 터치해 줄 존재를 사귀어야 한다. 그 존재가 오랜 동안 만나왔던 지인 가운데 있다면, 그 친구와의 관계를 평생 지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혹여 그런 존재가 이 땅에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구와 같이 관계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친구가 그리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과거에는 늙어도 함께 해 주고 병들어도 떠나지 않는 친구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다. 그러나 점점 자기 본위와 이익을 위해 인간관계를 하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만들기가 참으로 어렵다.

하나님을 친구로 삼자. 그 분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실 것이고, 우리가 약해지고 병들어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친구가 그립지만 그 영적 그리움을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회복하자. 친구되신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실 때 우리는 영원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