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품위있고 아름다운 근심과 걱정

3052

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걱정과 근심을 효과적으로 더 잘하기 위해서 훈련과 교육을 받거나 연습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보다 질 좋고 품위 있는 아름다운 근심과 염려를 하려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잠깐 동안 하는 ‘짧은 (Short-term) 근심’이던, 일생동안 함께하며 ‘라이프 롱(Life-long)’으로 괴롭히는 고통이건, 잠시 중심을 잃고 방황하게 하던, 삶을 정복하여 외부의 도움과 치료를 필요로 하던,  사람과 염려는 생명이 붙어있는 한 떨어 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행복한 삶을 괴롭히는 불편한 동반자 근심과 걱정, 염려가 생기는 이유는 첫 째, 삶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불행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성공하여 명성 있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나, 가난하고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나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 속담에도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을 한다.’고 했습니다. ​

둘째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닥칠 위험에 대비하고 있건 혹은 무방비 상태에서 맞건 미래라는 불확실한 단어는 근심하고 걱정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마지막 이유는 미래를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콜트론’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만일 우리가 현재나 미래의 모든 일을 원하는 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면 고통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 염려는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하여 고통에서 해방시켜야 할 의사가 오히려 병에 걸리고, 거룩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맡아야 할 성직자들과 교회들이 탈선하여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방향을 제시해야 할 리더들이 방향을 잃고, 도둑을 지켜야 할 경찰관들이 도둑을 맞거나 살해되며, 투자 전문가가 증권에서 돈을 잃고, 법률가들이 고발이나 고소를 당하며, 훌륭한 가정의 청소년들이 탈선을 합니다.  염려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 문제가 없는 교외 지역 학교로 전학하고, 좋은 음식과 전문가가 권장 받는 운동, 심신을 위한 여가 활동 등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지만 이는 또 다른 근심의 시작일 뿐 여전히 염려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또 걱정과 근심, 염려는 그 자체로 해결할 수 없는 뿐 아니라 확대되고 더 악화시킵니다.  머리카락이 빠져 염려해도 머리카락은 한 개도 더 나질 안습니다.  몸이 아플까 염려하셔도  오히려 그 염려는 방역체계를 약화시켜 병에 걸릴 확률을 높입니다.  실직을 할까 염려하면, 긴장으로 작업 능률이 떨어져 원하지 않은 실직을 더 빨리 할 수도 있습니다.  살이 쪄서 걱정이 하는 사람은 긴장과 스트레스로 음식을 더 먹어 결과적으로 몸무게가 불어납니다. 이들 해결 할 수 없는 근심과 염려는 결국 사람들의 죄 때문입니다. 죄의 욕망이 근심을 불러 옵니다.

그러므로 이를 원위치로 돌리는 ‘리셋 스위치(Reset Switch)’ 나 완전히 지우는 ‘딜리트 키(Delete Key)’ 위치를 아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 11:28)”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죄 짐을 지고 고통스럽게 살아가십니까?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 하려고 노력 하거나 노력하다 실패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 갈보리선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의 값을 완전히 지불 하셨습니다. 주저마시고 믿고 그에게로 나오십시오!  여러분의 죄 문제가 완전히 ‘딜리트 (Delete)’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