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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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의 삯은 사망(롬3:23-26)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연약한 죄인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죄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심각성은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덕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언행을 조심하며 됨됨이가 바른 기독교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은닉하고 자신을 변호하려는 노력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의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이 걱정이 되어 예수님 찾아온 한 부자청년이 영생의 방법을 예수님께 묻습니다(마19:16-23).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되묻습니다. – 네가 계명을 다 지켰느냐? “예 지금까지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자청년의 속을 휜히 다 들여다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19:21.)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하다가 예수님을 떠나고 맙니다. 물론 그가 결코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을 예수님은 미리 아셨을 것이지만 설혹 예상을 깨고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다 한들 그의 믿음을 예수님이 온전히 보셨을까요? 그의 본질은 그대로이고 옷만 좀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었을 뿐입니다. 기특한 일이기는 하지만 신앙하고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그 기특함이 남에게 정죄의 칼날이 될 수가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마음이 부패하여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죄인임을 망각하고 적당히 개조하여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는 시도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부자청년은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는 계명대로 도둑질 하지 않았다 말하지만 예수님은 -네 안의 탐심을 어떻게 할 것이냐? 또 그는 계명대로 간음하지 않았다 말하지만 예수님은. – 네 속의 음욕은 어찌 할 것이냐? 그는 계명대로 살인도 해 본 적이 없다 말하지만 예수님은 – 네 속의 증오심은 어찌 할 것이냐? 하십니다. 인간에게는 도무지 그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말부분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해답을 말씀합니다. –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한계, 유한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성경은 –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9)말씀합니다. 성경이 얼마나 죄에 대하여 단호한가를 말씀하여 주시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총체적인 죄인입니다. 다시 말해 손과 발과 눈을 범죄케 한 장본인은 손과 발과 눈이 아니라 부패한 마음을 가진 그 사람전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손 양발 양 눈 모두제거하고 몸뚱이만 남아도 아니 그 몸뚱이까지 제거해도 천국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거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것만 원하십니다. 계명을 다 지키고 하나를 못 지키면 계명 전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십니다. 죄인인 인간이 깨끗해지려고 더러운 부분들을 제거하고 보완한다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는 조건은, 죄인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저주를 온 몸으로 막아서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라는 의미는 죄를 향해 퍼 붇는 하나님의 저주를 예수님의 등 뒤에 숨어 안전하게 피한다는 의미임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