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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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2009년 조사에 따르면,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책이 출판되는 숫자가 29,000부라고 한다. 몇 백 권이 아니라 3만 여권의 책이 매일 밤마다 출판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초, 텍사스 지역에 수마를 끌고 왔던 허리케인 ‘하비’는 단 하룻밤 사이에 몇 개 도시를 수중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10여 년 동안 벌어졌던 트로이아와 그리스 간의 전쟁도 그리스군의 ‘트로이의 목마 작전’을 통해 하룻밤에 전쟁을 끝내기도 했다.

하룻밤이면 역사는 변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고로 예언이 되기도 했다. 이사야 15장 1절에서는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고 증거한다. 모압이라는 나라를 향한 심판에 대한 경고인데, 이사야 선지자는 모압의 멸망이 하룻밤에 일어나고 하룻밤에 끝나게 될 것이고 말한다.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에게도 ‘하룻밤’은 역사를 뒤바꾸는데 길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한 나라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바로 서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심판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하룻밤 사이에 망하게 하고 황폐하게 하는 것이다. 인애와 사랑이 크고 자비와 긍휼이 많지만, 심판과 재앙을 내려야 할 때에 하나님은 하룻밤 사이에 역사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은혜가 우리에게 있을 것인지, 아니면 모압처럼 하룻밤 사이에 하나님의 심판을 있게 될런지는 어느 누구도 전혀 모른다.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 그 화를 피하려는 삶을 사는 것보다 주님 앞에 경건하고 온전하며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교만하고 악하며 믿음이 약하여져서 하나님을 등지고 말씀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될 때, 우리에게도 수시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게 될 것인데, 그 심판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마태복음24장 44절에서는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증거하며, 시편 39편 4절에서는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이야기한다. 곧 하나님의 때는 언제 어떻게 임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 속 모압이라는 나라가 하룻밤 사이에 멸망하고 황폐하기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스라엘 주변에 있었던 여러 강대국들도 그러했다. 설마 애굽이 망하랴, 앗수르가 망하랴, 바벨론이 망하랴 …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 하룻밤 사이에 심판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런 하나님의 심판적 역사는 우리의 삶 주변에도 여전히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라고 부름을 받은 자들은 늘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매 순간 만나는 사람 하나 하나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목사인 호나티우스 보나르는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면서 “주님! 오늘 이 아침에 오시렵니까?”라고 말하면서 하루를 시작했고, 또 밤이면 창문을 닫으면서, “주님! 오늘 이 밤에 오시렵니까?”하고 인사하고 잠을 청했다고 한다. 특별히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심을 확실히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매 순간, 아침과 저녁, 모든 시간에 언제 오실 지 모르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가장 경건하며 온전하고 신실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은 곧 올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을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흥분하지도 말아야 한다. 늘 동일한 믿음과 신실한 신앙의 자세로 주님이 오실 그 날을 준비하면 된다. 어쩌면, 우리 하나님은 하룻밤 사이에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이 때마다 우리는 “주님 오늘 오시렵니까? 내일 오시렵니까? 오늘 밤에 오시렵니까?”를 외치며, 주님이 오실 그 날을 늘 생각하면서 지금 주어진 삶에 충성하며 일상의 삶에 항상 성실히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