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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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 나눔교회 담임)

사무엘 무어 선교사(Samuel Foreman Moore)는 알렌, 언더우드와 같은 시대에 조선 500년 역사의 신분 차별이라는 장벽을 복음으로 해방시키는 선구적 역할을 하였던 무명의 선교사다. 그는 1860년 9월15일 일리노이주 그랜지 리지(Grand Ridge)에서 목사 아들로 출생하여 몬타나 대학과, 맥코믹 (McCormick) 신학교를 졸업후 목사 안수를 받고 1892년 32살의 나이로 조선 땅을 밟았다. 마펫 선교사의 예수교 학당에서 성경공부를 지도 하면서 한국어와 문화를 배웠다. 그를 통하여 첫번째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이 무어 자택에서 일하는 식모였다. 1893년 6월에 이층집을 지어 독자적인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교인수가 43명이었고 두번째 장로교회인 곤당골 교회(승동교회의 전신)를 세웠다. 주중에는 자택에서 평민집안 사내 아이를 중심으로 남학교를 열고 교육을 실시 하였다. 당시 학생수가 20명이 이르렀으며 학부모들까지 복음을 전하여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는 나룻배를 타고 한강변 마을 중심으로 전도하여 동막교회와 대현교회를 개척 했으며 1900년에 이르기까지 25곳에 예배 처소를 세웠다. 신도들은 850여명이며 100명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무어 선교사는 복음 전도와 함께 천민으로 업신여겨 왔던 백정들의 인권과 남존여비, 샤머니즘, 고아교육 등 사회문화의 병폐를 깨뜨리는 사회 개혁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백정은 당시 가장 천대받는 직업에 종사했고 최 하위의 천한 신분으로 평민들과 구분되는 다른옷을 입어야 했으며 망건이나 갓을 쓰지 못하는등 양반 어린 자녀들 앞에서도 허리를 구부리고 얼굴을 들지 못하는 신분의 차별이 있었다. 이 시기에 무어 선교사의 남학교에 백정의 아들 봉출이가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 백정 박씨가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멜때 무어는 제중원 원장이며 고종의 시의였던 에비슨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박씨를 치료 하였다. 그 계기로 복음을 받아 들이고 곤당골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 양반 교인들이 박씨의 백정의 신분을 알게된 후에 반발이 일어나면서 절반 이상이 교회에 나오지 않했다. 그러나 무어 선교사는 백정 박씨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환대 하였고 나중에는 박성춘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1년쯤 지나서 세례를 받고 이후 1911년 백정 출신으로 한국교회 최초로 장로로 장립하게 된다. 그의 아들 박봉출은 후에 박서양으로 이름을 개명 했으며 제중원 의학교(세브란스 의대의 전신)에 들어가, 1회 졸업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가 되어, 모교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당시 백정 출신에게 교육 받기를 꺼려하는 학생들에게 박서양은 내 몸 속의 오백 년 묵은 백정의 피를 보지 말고, 과학의 피를 보고 배우라고 권했다. 박성춘은 장로로 입직후 3년이 되었을때 왕손이던 이재형씨가 장로가 된다. 한 교회에서 가장 천한 백정 출신의 선배 장로와 왕손 출신의 후배 장로가 같이 한 교회를 섬기게 된다. 당시 양반 기독교인들에게는 백정 출신이 세례를 받고 장로가 된다는것은 큰 반발을 일으킬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모어 선교사의 강한 의지는 꺾을수 없었다. 때로는 양반 교인들이 분열되어 떨어져 나가는 아픔도 있었지만 나중에 회개하고 3년만에 그들이 세웠던 홍문동 교회와 곤당골 교회가 합하여 중앙교회로 새롭게 출발한다.(현재 승동교회)  무어 선교사의 백정 신분의 철폐 운동은 평민들처럼 의복을 착용하는 동등한 권한을 갖게된다. 백정에 대한 차별대우가 철폐된것을 마르다 허틀리 여사가 자신의 저서「한국 개신교 선교 역사」에서 무어 선교사에 의한 조선의 백정의 해방을‘세계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라고 명명하면서“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을 얻은 미국 흑인들의 기쁨은 한국 백정들의 기쁨보다 결코 더 크지 않았다.” 라고 책에 기술했다. 무어 선교사는 낯설고 물설은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 와서 선교를 위해 청춘을 바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재중원에서 치료도중 그해 12월21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양화진 묘역에 안장 되었다. 그는 아름다운 인격을 가지고 한국 사람을 위하여 피와땀을 바치며 헌신했던 사랑은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참고도서: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한국 기독교와 역사, 사무엘 F. 무어 선교사 생애와 사상, 양화진 선교사들의 삶과 선교)